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다보면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깝다. 모든 비밀이 밝혀질 끝부분이 다가올수록 일부러 속도를 늦춰가며 읽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니콜로 암마니티의 <난 두렵지 않아>는 특이한 경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읽는 재미도 있고 분명히 독자들을 안심시킬 만한 ‘정의로운’ 결말이 있을 것 같은 소설인데, 남은 페이지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던 반전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마 하면서도 독자들은 점차 끔찍한 결론을 예상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그 불길한 생각은 현실이 된다.
첫 부분은 흔히 보는 다른 성장소설과 다르지 않다. 아홉살의 주인공 미켈레는 다섯 가구로 이루어진 이탈리아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산다. 폭염으로 어른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 있지만, 여섯명의 마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며 논다.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열두살의 ‘해골’은 내기를 시켜서 꼴찌에게 벌칙을 준다. 서열 3위인 미켈레는 내기에서 뒷발을 잡는 여동생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동갑내기 여자아이인 바르바라가 벌칙으로 팬티를 벗어야 할 때는 대신 벌을 받겠다고 나서는 용기를 보이기도 한다. 말썽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도 만드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아홉살짜리. 미켈레의 부모도 특별한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인 아버지는 며칠에 한번씩 선물을 들고 집에 들르고, 어머니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그렇게 지내던 미켈레는 어느 날 벌칙으로 폐가에 들어갔다가 누군가 마당에 파놓은 구덩이 속에서 귀신 같은 모습을 한 아이를 만난다.
오른쪽 발목이 쇠사슬에 묶인 채 죽은 듯 누워 있던 아이는 점차 미켈레와 말도 하고 가져다주는 음식도 얻어먹게 된다. 필립포라는 이름의 그 아이가 왜 구덩이 속에 묶여 있게 되었는지 독자들은 알 수 없다. 당사자인 두 아이도 세상일이 돌아가는 것을 정확히 알기에는 어린 나이. 매일 서로 만나면서도 그냥 그 상태대로 있다. 미켈레는 아버지에게 알리려고 하지만 바쁜 모습을 보면서 하루하루 미룬다.
소설의 비극은 아이들이 모르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평범해 보이는 미켈레의 부모, 그리고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마을 어른들이 바로 유괴범이었던 것. 점차 그 사실이 드러나는데도 소설의 분위기는 계속 가볍기 때문에 어린 소년들의 순진함이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어도 반전은 등장하지 않고 결국 한두장이 남았을 때는 작가가 준비한 것이 가장 끔찍한 결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상의 평화로움 속에 너무나 안 어울리는 비극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일깨우는 책. 다가오는 침몰을 모르고 기울어져가는 사물함 밑에 앉아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 소설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