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마흔이 가까워지는 시점에도 여전히, 그리고 또래 남자만큼(혹은 그보다 더)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도 여전히, 나는 백마탄 왕자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있을 리가 없다 하더라도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뭐래? 약간은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대해 남자들이 갖는 불만은 “둘 중 하나만 해”다. 남근 앞에 순종하든지 네 갈 길을 가든지. 모두 다 가지려고 하지 말라고. 그런 걸 부추기는 책을 읽지 말라고. 그래, 그렇게 현실을 잘 알아서 남자들은 AV를 보나? 결국 우리는 점점, “모두 다 갖는” 환상을 “환상 속에서” 충족시키고 있다. 실제로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컴퓨터 안의 폴더 안의 폴더 안의 폴더에 숨어 있거나 이북 단말기 안에 숨어 있기 마련이어서, 다소 분열적으로 진행되는 양상은 있지만 꿈꾼 것을 보거나 읽는 방법으로 (대리)만족하는 일은 얼마간은 가능하고, 마음 맞는 파트너를 만난다면 영상이나 글로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 에바 일루즈가 쓴 <사랑은 왜 불안한가>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가 낳은 믿을 수 없는 성공을 분석한다. 섹스와 낭만적 욕구를 충분히 누리고 싶은 인생을 위한 처방전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성생활 자기계발 지침서라고. 더불어 이런 현상은 여성들이 (이전보다) 포르노를 더욱 많이 소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섹스는 그 안에 러브스토리를 숨겨놓은 포장일 뿐이다”. 결국 그 둘 모두가 충족되어야 했다는 뜻이다. 너무 야하기 때문이라기보다 묘사와 전개가 너무나 노골적으로 유치해서 이 책을 남들 앞에서 읽기 꺼리게 되지만 실은 그런 점 때문에 열독한다는, 불량식품 같은 매력도 빼놓을 수는 없겠다.
더불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부추기는 ‘소비주의’는 비단 돈 많은 남자를 만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강력하게 소비를 요구하기. “‘섹시’하기 원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운동하고 화장품과 옷에도 아낌없이 돈을 써야 한다. 연애 상대를 갈망하는 사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나 레스토랑 같은 유흥가를 기웃거려야 한다. 섹스 행위 자체도 각종 보조수단, 성인용품과 포르노의 소비와 맞물린다. 공개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몸을 과시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현대의 섹스는 원하는 상대를 찾아 쾌락적 행위에 몰입시키는 여러 방법 중 적당한 것을 골라내는 능력의 각축장이다.” 마지막으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그 책을 분석한 <사랑은 왜 불안한가>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읽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 그러려면 사랑을 하든지 섹스를 하든지 일단 둘 중 하나라도 성공시켜봐야겠지. 어려워,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