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중 연합군이 독일의 드레스덴 지역에 가한 무차별 항공 폭격으로 민간인 수만명이 숨졌다. 현장의 목격자였던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분열적 혼란을 경험했다. 그는 독일계 미국인이었고, 미군으로 참전하여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 폭격을 퍼부어 그의 목숨을 위협하는 쪽은 아군인 미군이었고, 지하 도살장으로 피신시켜 그의 목숨을 살린 쪽은 적군인 독일군이었다. 그는 살상의 가해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보네거트는 <제5도살장>에서 이 드레스덴을 배경으로 세웠는데, 작중 인물이 정신분열에 시달리기에 사건이 놓인 시간축마저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드레스덴 폭격-도살장-정신분열-시간축 교란’이라는 심상의 연쇄고리를 경험한 것은 보네거트뿐만이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했던 김근태는 수기에서 그 인상을 보네거트와 흡사하게 기록하고 있다.
“인간 도살장, 이것은 지나친 표현일지 모릅니다. (…) 직접 고문을 당할 때는 극도로 혼란되어 있어 앞뒤가 뒤바뀌고 중복되어버려서 어떤 면에서는 제대로 판별을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버렸습니다. (…)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전개되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조그만 어느 시골에 하늘을 뒤덮으며 나타난 폭격기는 민가에 새까맣게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그 동네는 초토화되고 남녀노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김근태, <남영동>)
하지만 드레스덴에 얽힌 정신분열적 서사는 근래에 와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독일에서는 드레스덴 양독정상회담으로 통일준비조약이 체결되고, 한국에서는 김근태에게 내란음모 혐의를 씌웠던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내란음모죄 조항이 수십년 만에 다시 작동한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는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을 때 절정에 이른다. 보네거트와 김근태에게는 정신분열과 비인간성의 상징이었던 드레스덴을, 박 대통령은 분열 극복과 인도주의의 상징으로 규정한 것이다. 역사정신의 분열 증세라고 불러야 할까?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에서 벌어진 독일통일운동 당시 사용되었던 구호,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비어 진트 아인 폴크!)를 인용하는 것으로 연설을 끝맺었다. 드레스덴을 직접 경험했던 보네거트는 자신이 기억하는 또 다른 독일어를 <마더 나이트>에서 인용한 바 있다. “시체 운반자들, 위병소로!”(라이헨트레거 추 바헤!) 2차대전 당시 유대인 시체운반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들의 전임이었던 시체운반자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집권자에게 봉사하는 역할에 만족감을 느꼈다고 한다. 절망이 희망을 압도하면 분열적 착란이 일어난다. 그들의 후임이 된 시체운반자들이 옮긴 시체는 누구의 것이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