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세월호가 냈지만 사망은 박근혜 정부의 탓임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아무리 여론과 정보를 통제하려 해도 되지 않는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본능이 쥐고 감추려는 그들의 욕심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더이상 미안해하지 마”라는 유가족들의 의연함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인간의 품위’를 본다. 너무나도 고마운 말이다. 그 마음과 배려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자식 잃은 그분들께 내 자식 건사할 기운을 얻는다.
오늘도 아이는 최근 부쩍 관대해진 어미의 심기를 알아차리고는 친구들을 몰고 와 한바탕 집을 엎어놓는다. 놀 친구라도 있어 다행이다. 원전 터지면 어차피 끝장이니 학교 마치면 끼고 앉아 놀고 먹는 걸로 시간을 보냈건만 4월16일 이후 명분이 더 생겼다. 살아 있을 때 행복하자. 미안하지만 행복하자. 아이에게 늘 아쉬운 건 또래들이다. 많은 아이들이 바빠도 너무 바쁘다. 온 동네 아이들 틈에서 영어학원 안 다니고 방과 후 시간 널널한 아이들은 서로를 용케 알아낸다. 바쁘게 쫓기는 아이들도 서로 일과를 확인하며 어떻게든 놀려고 한다. 이렇게 어린 것들도 저마다 살 궁리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봄의 생명력을 닮았다. 그래, 놀아라 놀아, 더 많이 놀아라. 폼폼이 흔들며 응원가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해마다 세월호가 수장시킨 아이들의 수를 넘어서는 청소년 자살을 목도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적과 진학(진로)이다. 한창 경제활동에 바쁜 30대보다 15~19살 아이들이 더 여가 시간이 없다고 답변한다. 불안과 경쟁과 탐욕과 무책임에 아이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을 겪고 보니 내가 이곳에서 이 나이까지 산 것도 기적이다. 자식을 제명대로 살게 하는 것도 기적일 것 같다. 가장 상식적인 일이 가장 기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모두 세월호에 타고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