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화창한 아침나절 바다 한가운데로 배 한척이 가라앉고 있었다. 순식간에 온갖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를 잠식해버린 그 이름 ‘세월호’. 언론에 공개되기 몇분 전만 해도 그저 타본 사람이나 기억했을 소소한 이름 하나가 초혼에 바쳐진 그것처럼 모든 이들의 간절함 속에 여기저기 토해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밤 폭우 속 느닷없는 파도에 휘말려 손도 써볼 새 없이 뒤집힌 상황이라면 그 소요 그 소란에 어떤 수긍이라도 가련만 마른하늘에 배 떨어지는 이 전대미문의 참사를 놓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낼 수 있는 자, 그 누구일지 한편 궁금해지기도 하는 바였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큰 덩치를 어쩌지 못한 채 가라앉은 배, 그 안에 내 자식 내 부모 내 형제가 갇혀 있음에도 아이고 배야 그저 외쳐부르는 것 말고 네 할 일은 없다 못질 쾅쾅 해댄 손모가지가 내 국가란 사실이었다. 죽어가는 국민을 살려내지 못한 것만으로도 국가가 져야 할 죄목은 얼마나 무거운가. 그럼에도 아래로 더 아래로 네 탓이야 책임을 몰아가는 국가의 모양새는 또 얼마나 후진가.
뜨라는 배는 안 뜨고 연일 속보만 떠오르는 사이 온갖 뉴스와 SNS의 호들갑 속에 이 말 저 말 옮기기 바빴던 나는 어느 순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흥분이 분노로 분노가 슬픔으로 슬픔이 무기력으로 얼굴을 바꿔가는 과정 속에 이 얘기 저 얘기 글로 쓰기 바빴던 나는 어느 순간 펜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진도로 뛰어가 화장실 청소라도 하지 않을 요량이면 그것이 말이든 글이든 어느 누구에게든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삼면이 바다라 조선업의 대국으로 성장했으면서도 내 배를 내 배로 못 건지는 나라, 세계 최강이라는 인터넷 강국이면서도 빠르고 정확해야 할 내 나라 소식을 이웃나라 신문에서 읽게 하는 나라, 실로 애정결핍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주목받고 싶어 안달이 난 정치인들이 누가 더 멍청한지 하루하루 내기하고 있는 나라, 반 친구들 사이에 싸움이 붙어도 반장이 불려가는 걸 기본으로 아는 게 초등학생 조카인데 그 상식도 모르는 이가 수반을 자처한 나라, 도무지 말도 안 나오는 총체적 난국의 나라에서 무사히 내 나이 서른아홉해를 살아낸 것이 어찌 보면 기적 같기도 했다.
서해 페리호 사건 때 목숨을 건졌던 아빠 후배 영수 아저씨가 생각났다. 여러 동료의 죽음 속에 홀로 살아남은 것을 죄로 받아든 아저씨 역시 긴긴 시간을 생사의 양팔저울 속에 자신을 놓아두는 일로 지난 21년을 버텨왔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말기암이람. 그럼에도 너무나 말간 얼굴로 투병 중인 아저씨가 리모컨으로 반복 또 반복 일색이던 뉴스 채널을 껐다. 바다가 얼마나 춥고 무서운 데인 줄 알면 저렇게 두고 못 보지. 암, 못 두지. 자, 들을 분들 다 들으셨는가.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모르는 게 죄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