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만 잡꼬 잘께 ]
겉뜻 손을 잡는 것 외에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 속뜻 손도 잡겠다는 약속
주석 손을 잡는 것과 잠드는 것은 전혀 무관한 현상이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접촉성 수면장애라 부를 만한 증상을 갖고 산다. 마누라랑 닿을까봐 옷 껴입고 잔다고 고백하는 가장들이라면 누구나 이 증상을 안다. 그러니 손을 잡고 자겠다는 말은 잠들지 않겠다는 말이나 매한가지다. 사실 손과 입이 차지하는 표면적은 우리 피부에서 얼마 되지 않지만, 그것이 담당하는 지각의 비율까지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캐나다의 신경학자 와일드 펜필드는 감각 지각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의 면적에 맞춰 인간의 신체부위를 나타낸 모형을 발표했다. 몸의 각 부분을 맡고 있는 뇌의 면적에 따라 몸의 비례를 표시한 모형인데, 두손과 입술이 엄청나게 확대되어 있다(구글에서 ‘wilder penfield homunculus’를 검색하면 모형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이 모형은 손과 입술이 담당하는 감각이 얼마나 큰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입의 역할이 큰 것은 금세 이해가 된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가려내는 일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손은? 손 역시 우리 조상이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때부터 아주 중요했다.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했고 그래서 생존을 두손에 맡겨야 했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것과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이파리라도 잡으려 드는 것은 같은 일이다. 둘 다 필사적이다.
그이에게 빠진 당신의 손이 그이를 잡으려 드는 것도 마찬가지로 필사적인 일이다. 행여나 그이를 놓칠까봐, 당신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말을 건다. 손만 잡고 잘게. 오빠 믿지? 필사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으면 내일의 삶이란 다신 없다는 듯이. 그런데 사실 저 모형에 따르면 손만 잡겠다는 말은 내 감각의 대부분을 저 손이 잡고 있는 윤곽에 투자하겠다는 뜻이다. 그다음에는? 입술만 따라가면 되지. 물론 손만 잡고 자겠다는 ‘오빠’의 진심이 늘 오해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오빠는 정말로 그런 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다. 그녀에 대한 감각이 저 손을 타고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 그는 둑의 구멍에 손을 넣어서 조국을 구했다는 네덜란드 소년의 심정처럼 비장해졌을 것이다. 이 손을 포기하면 엄청난 재앙이 밀려오리라. 이 재앙을 견뎌내지 못한다면 조국도 사랑도 그녀도 전부 물 건너가리라. 잘못하면 짧은 흐느낌과 조그만 짐승으로 변신한 자기 자신만 남으리라. 실은 쓰나미가 바로 그 손을 통해서 건너오는 것인데도.
그렇게 오빠는 밤을 새워서 조국과 사랑과 그녀를 구원했을 수도 있다. 몸은 무척 피로해도 그의 마음은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소년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애국적인 실천의 끝에서, 그녀는 다시 그에게 묻는다. 오빠는 그때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알면 말해봐.
용례 홍상수 영화에 흔히 나오는 모텔이나 여인숙 장면은 이 고백에 대한 길고 상세한 분석들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