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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수다쟁이 챈들러씨
이다혜 2014-04-17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 북스피어 펴냄

“오늘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는 아주 좋은 평론이 실렸더군요. 딱히 내가 어제보다 오늘 더 부패에 정통하게 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기자는 험프리 보가트를 주연으로 염두에 둔다는데 나 또한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예요.”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1939년 2월19일, 편집자 앨프리드 크노프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챈들러의 출간 목록을 찾아보니 여기서 말하는 책은 <빅 슬립>인 모양으로, 이 영화는 1946년에 하워드 혹스 연출, 험프리 보가트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한국에서는 <명탐정 필립>이라고 소개되었던 그 영화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서간집인데, 오고간 편지 모두가 아니라 챈들러가 쓴 편지만을 묶었다. 편지글마다 애초의 편지에는 없었을 스포일러성의 제목이 붙었다는 점은 아쉽지만(마치 업무 메일 같아 보인다- 상대가 제목만 보고도 열어볼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유혹하는 제목들 덕분에 더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

챈들러는 꽤 솔직하게 이런저런 심경을 편지에 적어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소설을 깎아내린 매체에 대한 화,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하는 과정의 열정, 매번 이전 책과 비교해 욕을 하는 독자들에 대한 원망, 무엇보다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까지도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고민할 법한, ‘소설’과 장르소설을 차별하는 평론가들에 대한 비판. 예컨대 이런 구절. “구성도 엉망이고 진지한 척이나 하면서 저 멀리 남쪽에서 목화 줍는 무리의 인생을 다루는 작품에는 단(段) 하고도 반이 넘는 정중한 관심이 주어지는 반면에, 추리소설은 아무리 잘 써도 고작 한 문단으로 다루어질 테니까요.”

동료 작가들에 대한 애정어린 평가도 자주 편지에 썼던 챈들러는, 대시엘 해밋의 <몰타의 매>에 대해 가해진 공격(단순하고 따분하다)에 대한 반대의견이라든가 존 딕슨 카의 글을 읽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심경고백,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매력에 대한 인정(“잘 쓰거나 스타일이 깔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일종의 끈끈한 마법이에요. 절제되고 우아하며, 현악 4중주를 듣고서나 느낄 무엇 말입니다.”) 그리고 헤밍웨이에 대한 비판(“헤밍웨이의 작품은 구십 퍼센트가 빌어먹을 자기 복제예요. 그는 사실상 단 한 작품만 쓴 겁니다. 나머지는 전부 같은 몸에 다른 바지를 입은 거죠. 아니면 바지를 안 입었거나.”)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말을 아끼지 않았다. 챈들러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뜻밖에 그의 수다스런 면모에 놀랄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창조한 사립탐정 필립 말로에 대해 길게 부연하는 대목을 찬찬히 읽고 있자면 마치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 아는 사람에 대해 웃음 섞인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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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 챈들러씨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