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 즉위 20년, 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왕족과 수행원을 비롯한 6천여명의 사람들이 서울에서 수원을 오가며 벌인 8일간의 축제를 기록한 인쇄본이다. 이 의궤는 2011년 프랑스로부터 145년 만에 반환되면서 알려졌다. <의궤, 8일간의 축제>라는 이름의 3부작 다큐멘터리가 2013년 10월10일부터 방영된 바 있으며, 개봉작은 이를 재구성한 것이다. 기존 내레이션을 담당했던 배우 이성민 대신 여진구를 내레이터로 기용해 좀더 친절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살렸다. 목판화나 금속활자를 그래픽으로 되살린 화면과 이를 설명하는 내레이션, 그리고 배우들에 의한 재연 드라마가 다큐멘터리를 이끄는 두축이다. 역사적인 사료에만 기대지 않고 카메라워크나 미장센 등 나름의 미학을 표방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재연 드라마와 그래픽 부분이 서로 잘 붙지 않는 것은 아쉽다. 방대한 자료를 펼치다보니 어디에도 방점이 찍히지 않는 것도 그렇다. 8이라는 숫자를 뫼비우스 띠 모양처럼 비치는 오프닝 시퀀스는 숫자 8이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품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8은 8일간의 축제를 기록한 8권의 책이라는 의미 외에도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관련된 숫자다. 다큐멘터리는 사도세자 이야기를 통해 축제의 시간이 죽음의 시간과 뫼비우스 띠처럼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보통 사극에서 또 다른 사건을 위한 교두보에 지나지 않는 축제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그 잉여의 시간 속에 숨겨진 역사적인 사건을 읽어내려 한 시도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