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입주자 대표를 지내셨던 분이 빨간 점퍼를 입고 동네를 누비며 명함을 뿌리신다. 관리사무소 운영이나 이런저런 입찰을 ‘말아드셨다’고 평가받는 분이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본인 자랑 백 마디로 응답하는 편이라 대화가 불가능했는데, 어쩌자고 시의원까지 하려나 싶다가 나설 만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자치의 선량들 가운데 대표적인 유형의 하나일 수 있다. 인상 좋고 말 많으며 지칠 줄 모르는 ‘자뻑’ 스타일. 이런 에너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한량이 선량으로 바뀌기도 하는 게 동네정치니까.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주거와 환경, 복지, 교육 등 정책의 집행자이자 전달자로서 지방자치는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이다. 나아가 정치적 인큐베이팅 역할도 한다. ‘나 잘난, 더 잘난’ 틈에서 내가 뽑은 이가 재선, 삼선 하는 걸 보면 꼭 내가 키운 것 같아 뿌듯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버리고 후보를 공천하기로 결정했다. 나도 나름 ‘정치 고관여 유권자’이건만 정체 모를 ‘스펙’과 ‘경력’을 혼자서 교통정리해가며 후보를 변별할 정도는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로서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한 기분이다.
이번 무공천 파동을 보면서 안철수 대표는 정치적 혐오와 무관심의 뿌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이 문제인데 자꾸 형식을 바꾸려고 든다. 그걸 명분 삼아 ‘공허한 행보’를 거듭한다. 지금 사람들에게 정치적 에너지가 고갈됐다면 그건 ‘반복된 좌절’이 낳은 결과이다. 제도의 한계나 부작용 때문이 아니다. 제도를 들이받는 과정에서 정치적 역동성을 살려내는 것은 노무현의 실험으로 끝났다. 지금 야당에 필요한 것은 수십년간 박정희(와 그 후예)와 싸웠던 DJ의 덕망과 지략이다. 안 대표가 좀더 정치적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