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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의지한다는 것
금태섭(변호사) 2014-04-10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지음 / 시공사 펴냄

가장 연극적인 소설을 꼽는다면 아마도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공황 시대인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소도시를 무대로 한 이 소설에는 네명의 개성 있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비감한 어조로 각자의 사연을 쏟아놓는다.

당시 찾아보기 힘든 흑인 의사인 코플랜드 박사는 가장 위대한 나라로 자칭하는 미국에서 처참한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 아침 여기 모인 젊은이들 중에는 교사나 간호사나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될 필요를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절당할 것입니다. … 우리들은 짐승의 일보다 더 쓸모없는 노동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흑인 여러분! 우리들은 궐기하여 다시 완벽해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제이크 블런트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 의사보다 더 드문 존재인 공산주의자(겸 알코올중독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들은 사람들의 피를 빨고 뼈를 약하게 만들었소. 팽창하던 옛 시절은 갔소. 자본주의 민주주의 제도는 모두 썩고 부패했소. 앞으로 길은 오직 둘뿐이오. 하나는 파시즘이고, 또 하나는 가장 혁신적이고 영구적인 개혁이오.” 음악가를 꿈꾸면서 비밀 공책에 악보를 그리던 14살의 소녀 믹은 아버지의 빚 때문에 10센트 상점에 취직하면서 ‘그러나 피아노에 관해서는 일이 풀릴 수도 있어. 곧 기회가 올 수도 있어. 그렇지 않다면 음악에 대해 느낀 것들이, 내면의 방에서 세운 계획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라고 생각한다. 마을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비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믹에 대한 마음으로 괴로워한다. ‘인정되지도 않고 이름도 없는, 모든 남자들 속에 있는 그 어두운 죄.’

이 네 사람이 답답할 때마다 찾아가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는 상대가 이 소설의 주인공 존 싱어다.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존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 입술 모양을 보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존만은 자신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언제나 말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에게도 그만의 괴로움이 있다. 그를 지탱해주던 유일한 이유가 없어지자 그는 더이상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뜨고 만다. 존은 정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혹은 그냥 예의바르게 앉아 있었을 뿐일까. 사람들이 얼마나 애타게 의지할 대상을 찾는지,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대상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슬픈 소설. 그 시절을 살아간 등장인물들의 고통이 우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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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한다는 것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