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무려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는다.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의 도시락을 배달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은퇴를 앞둔 회계사 사잔(이르판 칸)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외롭게 살고 있다. 그 역시 작은 식당에서 도시락을 배달시키곤 하는데 하루는 다른 도시락이 도착한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그 정성에 감탄한 사잔은 도시락을 말끔히 비워 다시 돌려보낸다. 물론 이는 작은 배달 사고였지만 도시락의 주인인 일라(님랏 카우르)는 누군가가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 것에 큰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다음날도 맛있는 도시락에 다음과 같은 짧은 편지를 넣어 보낸다. “맛있게 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때부터 사잔과 일라는 도시락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고, 곧 깊은 속내까지 털어놓기 시작한다. 유머러스하던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이때부터다.
먼저 우리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인도의 문화와 두 남녀의 진솔한 소통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기획이 눈에 띈다. 인도의 젊은 감독 리테쉬 바트라의 장편 데뷔작인 <런치박스>는 두 남녀가 편지를 주고받는 소재를 택함으로써 전형적인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안에 인도 사회의 구체적인 현실을 생동감 있게 집어넣었다. 인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도시락 배달이란 설정은 물론, 영화 중간중간에 들어간 전통 음식에 대한 묘사, 그리고 급격히 변화 중인 대가족의 모습 등 인도라서 가능한 사실적인 세부 묘사가 <런치박스>만의 색과 향을 더한다. <런치박스>의 두 번째 장점은 그 독특한 재료를 이용해 보편적인 고민까지 녹여냈다는 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마음 둘 곳을 쉽게 찾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들로 누가 따뜻한 밥 한끼만 차려줘도(또는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기만 해도) 금세 마음이 열리는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에게 오히려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작은 위로를 구하는 모습은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미리 말하자면 <런치박스>는 주인공들이 갑자기 세상의 고민을 모두 잊은 채 행복한 미래를 기다리는 거짓말 같은 해피엔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먼저 행동하는 대신 종종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서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이 고민과 걱정에 빠지는 침묵의 순간을 차분히 포착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이 영화의 세 번째 미덕이다. 씁쓸함이 입안에 남지만 그 맛을 계속 생각하게 하는 음식 같은, 그런 미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