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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인상적인 법정물
이다혜 2014-04-03

<파계 재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 검은숲 펴냄

다카기 아키미쓰의 <문신살인사건>은 감탄을 자아내는 트릭과 인상적인 반전, 그리고 들고 다니며 읽기 신경 쓰이는 야릇한 표지로 유명하다.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무심코 챙겼다가 다른 승객이 볼세라 앞표지와 뒤표지를 붙여 손에 꼭 쥐고 읽느라 쥐가 날 지경이었는데도 단숨에 완독했던 기억이 난다. <파계 재판>은 그의 법정추리물. 화자는 법조기자이며, 법정에서 거의 모든 일이 벌어진다. 한 남자가 부부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재판장에 선다. 피의자는 사망한 아내쪽과 불륜관계에 있었고, 그 사실을 알아챈 남편을 살해한 뒤 사체 유기, 얼마 뒤에는 그 아내마저 같은 방법으로 죽였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피의자의 변호사다. 그는 재력을 갖춘 데다 금실 좋고 영민한 아내를 두고 있다. 돈을 아끼지 않고 조사해 검찰쪽과 맹렬히 맞선다.

법정물의 재미는 어쩌면 법의 가혹함에서부터 출발한다. 죄를 지었는지가 아니라 죄를 입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고, 죄가 없는지가 아니라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망자 앞에 한탄하며 “내가 죽였다”라고 예전의 과오를 자책하는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기도 했다는, 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의 실수담은 도시 전설처럼 떠돌기도 하지 않았나. <로 앤 오더> 같은 미국 드라마에서도 법정 신은 그 ‘입증’의 관점에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경우는 유무죄 여부를 독자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마지막 순간에 평결이 나기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증인이 등장할 때마다, 검사와 변호사가 번갈아 등장할 때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법정에 뛰어들어와 변호사에게 쪽지를 건네는 조수가 등장하고 마침내 최후변론이 이루어지는 때까지 매 순간 반전이 일어나곤 한다. 다카기 아키미쓰는 <파계 재판>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일본은 배심원제가 아니기 때문에 법정추리물이 없다고 했는데 한국 사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화 <어 퓨 굿맨>과 소설 <무죄추정>, 그리고 드라마 <보스턴 리걸>을 비롯한 전설적인 법정물은 전부 미국에서 쓰이고 만들어졌다. 배우에 가까운 연기력을 보여주며 법정을 무대로 바꿔버리는 놀라운 기술이 관객, 즉 배심원을 의식한 것이기 때문이다. <파계 재판>은 1961년에 쓰인 소설이라 여자에 대한 편견이나 피의자의 비밀의 실체, 과학기술의 한계(정액이 검출되어도 DNA 테스트는 꿈도 꿀 수 없다) 등이 2014년 독자에게는 다소 답답함을 안기지만 배심원제 없이도 충분히 긴장감 있는 법정물을 완성할 수 있음을 인상적인 반전드라마로 완성해 보여주었다. 부디 이 지면을 번갈아 쓰는 금태섭 변호사 혹은 영화기자보다는 법조기자로 더 ‘날렸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한겨레>와 <씨네21>의 (지금은 퇴사한) 임범 기자가 근사한 법조물 한편 쓰는 날이 오면 좋겠다. 한국에 기막히고 절박한 사연어린 사건들, 참 많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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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법정물 <파계 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