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의 과학실. 선생이 학생을 체벌한다. 학생은 맞으면서도 꿋꿋이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제 말이 맞긴 맞는 거죠?” 학생의 이름은 박정구(변요한). 장면이 바뀌면, 정구와 그의 친구가 초조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체벌 교사가 자신의 차에 오르면 잠시 뒤 차 안에서 폭탄이 터진다. 소년들이 저지른 범행이다. 11년 뒤. 정구는 대학원 연구실에서 조교로 일하며 번듯한 일자리를 알아보는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남몰래 사제폭탄을 만든다. 누군가가 폭탄을 터뜨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느 날 정구는 학교에서 이효민(박정민)이란 학생을 알게 된다. 효민이 제출한 리포트엔 “작성자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움”이란 교수의 평이 달려 있다. 정구는 그런 효민의 뒤를 밟으며 그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효민에게 자신이 만든 폭탄을 배달한다. 효민이 그 폭탄을 터뜨려줄 적임자라는 판단에서. 그러나 효민이 실제로 폭탄을 터뜨리면서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정구는 폭탄을 터뜨릴 용기가 없지만 효민은 그럴 배짱이 있다. 정구는 가진 것이 없지만 효민은 가진 게 많은 부모를 뒀다. 정구는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지만 효민은 일원이 되길 거부한다. 정구는 멈추려 하지만 효민은 달리려 한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지만 결국은 아웃사이더 혹은 사회 부적응자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들개>는 정구와 효민을 통해 이 시대 청춘들의 답답한 현실을 얘기한다.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고 싶으면 기꺼이 비굴해져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회 말이다. 여기에 사제폭탄이라는 소재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들의 현실을 부각하는 기능을 한다. 동시에 단출한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극적 장치가 된다. 실제로 정구가 효민에게 배달한 첫 번째 폭탄이 터지면서 이야기는 힘을 받기 시작한다. 액션, 스릴러, 범죄영화로서의 매력을 풍기면서 영화는 예측 불가능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인물들이 도식에 갇힌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순응하려는 자와 저항하려는 자의 대립이 세상에 어떤 파문을 던지지 못하고 그들만의 싸움으로 끝나버리는 것도 아쉽다. 그 아쉬움을 상쇄하는 건 정구와 효민을 연기하는 두 젊은 배우다. <파수꾼> <전설의 주먹>으로 얼굴을 알린 박정민은 첫 등장 신부터 ‘나 위험인물이오’라고 온몸으로 연기한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광기 넘치는 캐릭터를 표현해낸 것도 인상적이다. 반면 변요한은 신인 같지 않은 안정감으로 정구를 현실에 발붙인 인물로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