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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가족 계보의 가장 신랄한 버전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언제부터인가 스크린 위의 가족은 ‘애정’이나 ‘화목’이라는 단어보다 ‘막장’이나 ‘콩가루’ 같은 단어들과 더 빈번하게 접합되기 시작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옭아매고 숨통을 조이는 데 기여했는지를 폭로한다. 시나리오작가이자 영화배우인 트레이시 레츠의 동명 희곡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은 ‘막장’ 가족 계보의 가장 최신이자 가장 신랄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구강암에 걸린 바이올렛(메릴 스트립)은 남편 베벌리가 실종되었음을 딸들에게 알린다. 근처에 사는 둘째딸 아이비(줄리엔 니콜슨)가 제일 먼저 달려오고, 아버지가 가장 아꼈던 장녀 바바라(줄리아 로버츠)도 남편(이완 맥그리거)과 딸을 대동하고 멀리서 찾아온다. 어디 처박혀 책이나 읽다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베벌리는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고 가족 모임은 곧 장례식으로 이어진다. 사랑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찾겠다는 결의에 찬 막내딸 캐런(줄리엣 루이스)은 영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 남자친구 스티브(더모트 멀로니)를 장례식에 데려온다. 항암 투병과 약물 중독 게다가 남편의 자살까지 겹친 바이올렛은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모든 가족에게 독설을 퍼부어댄다. 조용하게 어머니를 부양하리라 믿었던 아이비는 좀 모자라 보이는 사촌 리틀 찰스(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사랑에 빠져 뉴욕으로 떠날 계획에 부풀어 있고, 캐런도 또다시 맞이할 신혼의 단꿈에 설레지만 행복에 도달하려면 넘어야 할 장애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남편이 젊은 애인과 바람이 나 별거 중인 바바라는 자신의 삶만으로도 버겁지만 속속들이 폭로되는 가족의 흑역사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희곡을 원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인지 사건보다 주로 인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데, 서로의 상처를 후벼파는 대사들이지만 오히려 극도의 신랄함이 자연스럽게 유머로 이어진다. 연기파 배우들로 이루어진 화려한 캐스팅 덕에 등장인물의 면면만 보고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줄리아 로버츠와 메릴 스트립의 흰머리와 자연스럽게 주름진 얼굴은 인공적으로 동안을 유지하는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타들과 대별되어 “여자는 나이가 들면 추해질 뿐이다”라는 바이올렛의 대사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대부분의 막장 가족들이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서둘러 화해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끝까지 쉽게 서로를 놓아주지 않는다. ‘가족이란 우연히 비슷한 유전자 조합을 가졌을 뿐’이라는 아이비의 냉소에 쉽게 동의하지 않지만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힐링을 강요하지는 않는 이 작품의 결말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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