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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우리보다 ‘나’
이다혜 2014-03-27

<기업가의 방문> 노영수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파업만 했다 하면 ‘불법’ 딱지를 붙이는 한국에서, 최근 사용자쪽의 무기로 가장 자주 동원되는 것은 손해배상가압류다. 손해배상가압류는 미래를 저당잡는다. 오늘은 물론 내일도 모레도 죽도록 빚만 갚을 게 아니라면 조용히 있어, 라는 경고. 먹고살기 위해 무릅써야 하는 일들은 그렇게 날로 늘어갔다. 중앙대가 휴가도 없이 일해야 했던 청소 노조원들에게 노래 1회, 구호 1회, 대자보 1장당 100만원을 내라고 했던 일을 기억하는지. 두산에 인수된 중앙대에서 진중권 교수의 재임용 탈락을 필두로 학과 구조 조정을 비롯한 이슈를 위해 싸우다 퇴학당한 노영수의 <기업가의 방문>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묶은 <안녕들 하십니까?>가 출간되었다. 인간적인 삶과 돈 중 후자가 압도적 우위에 놓이는 현실에 대한 현장보고서들. 얼마 전 삼성이 대학총장추천제를 하겠다고 했다가 무효화한 일도 여기서 특별히 다른 일이 아니다. 기업의 논리로 학교가, 사회가 돌아갈 때 벌어지는 일은 무엇일까.

막연하게 ‘좋아질 것이다’라는 게 일반적인 ‘기대’였다. 학생, 학부모, 그리고 청소 노동자들까지 그렇다. 이 기대가 충족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업가의 방문>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은 바로 그 지점이다. 예컨대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하는 대자보가 돈의 논리에 짓눌려 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세상에 존재하는 건 아니다. 젠체하는 말투가 싫다든가, 정신차리라든가 하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붙는 대학가의 풍경은 80년대, 아니 90년대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기업가의 방문> 6장에는 학생 자치와 학교 주도라는 대치상황이 등장한다. 대학의 기업화를 풍자하는 만평과 두산이 중앙대에 들어온 뒤 진행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하는 글이 실린 교지 <중앙문화> 58호는 학교 직원들에 의해 전량 회수되었다. 뒤이어 교지 예산은 전액 삭감. 운동권 성향이 강한 학생회가 주도하는 새터(새내기 배움터)를 방해하기 위한 학교쪽의 신입생 말하기 평가시험 일정 조정. 농활 역시 살아남기 어려웠다. 학교에서는 예산을 삭감한 농활의 대안으로 두산과 학교가 주도하는 국토대장정과 팜스테이를 이끌었다. 기간은 농활과 비슷한 때로 잡혔고, 학교 주도 행사에서 나부끼는 협찬사를 비롯한 대기업 두산의 깃발은 많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심지어 이력서에 쓸 수 있는 봉사활동 확인증과 고가의 장비 지원도 뒤따랐다. 2009년 국토대장정이 시작된 이래 국토대장정 참가자들 중에 총학생회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총학생회장은 두산에 입사했다. “학생회 자치활동의 장이 어느덧 개인적 만족과 자긍심에 도취된 소시민들의 사교의 장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그게 나쁜가, 묻는 지친 목소리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만 아니면 돼’라고 앞만 보며 달리는 세상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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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나’ <기업가의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