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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설입니까?
이다혜 2014-03-27

<오리지널 오브 로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젊은 나이에 죽은 뒤 사후 출간된 시집으로 유명해진 시인의 친구(이자 소설가)가 술자리에서 말하길,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시집에 넣지 않았을 시까지 긁어모아 책을 엮었는데 그 친구가 버렸을 법한 시들이야말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아 괴롭다고 했다. 작가 사후 남은 원고를 마주한 가까운 이들의 딜레마가 그것이다. 작가가 남은 원고에 대해 별말이 없어도 문제이고 말을 해놓았어도 문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남긴 <오리지널 오브 로라> 원고를 ‘폐기하라’는 엄명을 받은 아들 드미트리 나보코프는 이 원고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가 수십년 전 <롤리타> 초고를 소각장으로 향할 운명에서 구해냈던(아버지로부터 가로챘던) 일을 떠올렸다. 카프카가 막스 브로트에게 <변신>과 <성>을 비롯한 이미 출판됐거나 미출간된 걸작들을 파기하라는 임무를 맡긴 것이 (우리에겐 다행스럽게도) 실패했듯이, 어쩌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원고 파기를 부탁하면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작가 사후 32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오리지널 오브 로라>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원고를 ‘그대로’ 실었다. 그는 인덱스카드에 번호를 매기고 연필로 글을 썼다. 인덱스카드 하나에 한 문단씩이 맺어지지는 않는다. 곳곳은 뭉개져 있고 지워져 있으며 덧붙여져 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완성되었다지만 다 쓰이지 못했으니 이렇게 읽어서는 소설의 몸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해설이 알려주는 소설의 구조와 <오리지널 오브 로라>에 얽힌 사건들(그중에 위작사건은 특히 흥미진진하다)을 먼저 읽는 편이 작가의 메모를 따라가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모험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저 원고를 따라가며 나보코프의 이야기를 상상할 것. “몽상과 각성의 차이점에 대해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만약 당신이 그녀를 추궁하면, 그녀는 마치 납작머리 푸른 뱀처럼 당신에게 달려들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나보코프의 머릿속에 존재했던 그 완성본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미완의 원고를 따라가는 일의 재미. 앨리스가 되어 문장 속으로 뛰어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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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입니까? <오리지널 오브 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