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장고가 길어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차기작 고르기에 신중을 기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얘기다. 2012년 <링컨>의 연출 이후 그는 아직까지 다음 연출작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그간 감독의 눈길을 잡아끈 작품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한때 가장 유력한 차기작으로 꼽혔던 건 대니얼 H. 윌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로보포칼립스>. 영화는 인류의 과학 문명이 발전하면서 끝없이 제기되어왔던 질문, ‘과연 인간과 로봇 중 누가 더 똑똑할까?’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예전에 스필버그는 “이런 주제가 더이상 새롭지는 않지만 그만큼 우리의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는 이야기”라며 영화화에 관심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0월 <CB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간의 나의 경력을 돌아봤을 때, 지금 이 시기는 약간의 정체기”라는 말과 함께 <로보포칼립스>를 향한 자신의 애정이 식었음을 드러냈다. “더이상 그 작품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 정도면 확실한 의사표현이다.
<분노의 포도>의 리메이크 버전 또한 그가 저울질하던 작품이었다. 존 스타인벡의 고전소설을1940년 존 포드 감독이 처음으로 영화화한 이후 무려 70여년 만에 진행되는 리메이크 소식이었다. 어린 시절 존 포드의 영화를 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그의 야심찬 프로젝트로 예상돼 세간의 관심이 커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이 작품의 감독보다는 제작자로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연출에서 발을 뺐다. 대신 자신은 2015년 개봉을 목표로 하는 액션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준비하겠다며 나섰지만 예산 문제라는 애매한 말을 남기며 끝내 하차 소식을 전해왔다.
최근 그가 유력한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 작품이 있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연출한 바 있는 뮤지컬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리메이크가 바로 그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 슬럼가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바꿔 만든 독창적인 작품이다. 만약 스필버그가 이 작품에 도장을 찍는다면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뮤지컬영화에 도전하는 셈이다. 과연 그가 최종적으로 골라잡을 최후의 작품은 무엇이 될 것인가. 거장의 선택을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