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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크로] 불완전한 아름다움
장영엽 2014-03-24

<노아> 러셀 크로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 선택된 줄 알았어요.” 가족에게마저 혹독한 심판의 잣대를 들이미는 아버지에게 실망한 아들이 쏘아붙이자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분이 나를 선택한 것은 내가 그 일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야.”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노아>에서, 창조주의 대리자인 노아는 가혹한 수행자다. 아름답고 선한 존재들만 살아남은 새로운 낙원을 열기 위해, 그는 무시무시한 집요함으로 타락한 세계의 완전한 종말을 이끈다. 하지만 그의 추진력을 막아서는 건 언제나 ‘인간적인’ 마음이다. 대홍수에 휩쓸린 생명체들이 울부짖고 애원하며 죽어가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방주 속에 앉아, 노아가 경험하는 건 ‘생지옥’이다. 그의 완고한 모습에 사랑하는 아내마저 저주를 퍼붓는다. “당신이 좋아하는 모두가 당신을 증오할 거예요. 그게 ‘정의’예요.” 신인류 최초의 슈퍼히어로가 감내해야 할 정신적 고통은 그가 지은 방주만큼이나 거대하고 깊다.

노아를 연기하는 러셀 크로는 언젠가 “<노아>의 현장으로 출근하는 건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성서 속 인물의, 누구도 알지 못했던 고뇌를 담아내는 작업이 (<노아>의 촬영지인) 아이슬란드의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았으리란 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노아>의 시나리오작가 아리 헨델은 “가장 고되고 힘들며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불평 없이 수행할 만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했을 때, 관객이 무리 없이 믿을 수 있는” 배우가 바로 러셀 크로라고 말한다. 그건 그의 우직하고 고지식한 인상이나, <글래디에이터> <로빈 후드> 같은 에픽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점이 아닌 듯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쉬운 길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험난한 길을 돌아가는 인물을 연기할 때 러셀 크로는 가장 빛났다. 담배 회사가 은폐하고 있던 진실을 폭로하는 <인사이더>의 내부 고발자, 가족의 복수를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남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정의 구현이 인생의 모토인 <LA 컨피덴셜>의 형사 버드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실생활에서도 그는 결코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촬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 현장에서 이탈하고, 아카데미 시상식 프로듀서가 자신의 수상 소감을 잘랐다는 이유로 폭언을 퍼부었으며, 오보를 쏟아내는 인터넷 매체 기자들과 인터뷰하지 않겠다며 ‘매체 검열’에 나서기도 했던 그의 거침없는 행동 때문에 오랫동안 러셀 크로에겐 ‘악동’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주변의 어떤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 웨이’로 살아가는 러셀 크로의 모습이 <노아>를 준비하던 대런 애로노프스키에겐 깊은 인상을 남겼나보다. “그는 누군가의 전작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존경을 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러셀의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게 증명을 해내는 게 필요했다. 난 그의 그런 모습이 좋았다. 이 일에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배우를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 애로노프스키는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첫 번째 약속. 당신은 (노아를 연기하며) 절대 샌들을 신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 약속. 어떤 장면에서도 당신을 기린과 코끼리가 걸어들어가는 뱃머리에 함께 세워놓지 않을 거다.” 애로노프스키의 캐스팅 제안을 수락한 러셀 크로는 다양한 버전의 성서를 읽으며 노아라는 인물의 내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성경의 어느 한 구절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노아는 포도밭을 만든 첫 번째 사람이자,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최초의 인간이다’라는 구절이 성경에 있다. 그가 새로운 육지에 닿자마자 처음 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러한 행동에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반영되었을 거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성서 속 한 대목은 곧 <노아>의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같은 종족을 말살한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채, 포도주를 마시고 만취 상태로 해변가에 쓰러져 있는 러셀 크로의 초췌한 나신은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계시를 받는 성스러운 대리자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의 ‘인간다움’이 인류를 구원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우리는 <노아>에서 목도하게 된다. 그건 불완전한 아름다움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며) 아름다움에 잠식되고,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한 뒤에… 나는 물에 젖었다. 그건 마치 내리막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번 촬영에 들어갈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 장면의 아름다움을 먼저 느끼려고 애썼다.” 인류의 파멸과 새 출발을 동시에 경험하는 최초의 인간을 연기하는 러셀 크로의 모습에는, 그가 <노아>의 현장에서 느꼈던 아름다움과 시련의 순간이 녹아들어 있다. 과정이 어쨌건, 성서의 한 구절을 빌려 ‘보기에 참 좋은’ 장면인 건 분명하다.

진실하고 거침없는 마음

<노아>의 러셀 크로에 대해 알아두면 좋을 다섯 가지 사실

러셀 크로는 <노아>의 개봉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계정으로 트위터 멘션을 보냈다. “이 영화가 당신을 매혹시킬 것”이라며 <노아>의 관람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그는 여전히 거침없는 모습이다.

<노아>의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느냐는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러셀 크로는 이렇게 답했다. “29.6도의 날씨에 발가벗고 아이슬란드 해변에서 하루종일 달려야 했던 것. 그리고 미친 듯이 추웠던 날씨.” 특히 수중 촬영이 많았던 이번 역할을 두고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노아의 정체성이 한마디로 “젖은 노아”라고 농담을 하기도.

러셀 크로와 처음 호흡을 맞추는 에마 왓슨은 현장에서 그가 노아를 연기하는 모습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러셀은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믿는 것이 아니면 절대 말하지 않는다. 나는 <노아>의 리허설 과정을 기억한다. 우리는 시나리오의 단어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짚어갔다. 러셀의 머릿속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되어야 했다. 그는 그 정도로 꼼꼼하다. 모든 것에 그토록 진심으로 마음을 쓴다. 그는 그냥 프로젝트에 합류하지 않는다. 그 점은 존경해야 한다.”

수많은 현장에서 감독과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던 러셀 크로지만, 대런 애로노프스키와의 작업은 그를 만족시킨 듯 보인다. “그는 같이 일하기에 어려운 감독이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거든. 하지만 난 그 점이 좋았다. 그가 항상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증거니까. 또 그는 절대 연출을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촬영이 길어져도, 추워져도, 밤을 버텨내기 힘든 순간에도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바로 그런 점이 그가 왜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 같다. 그는 사람들을 어떤 장소로 모은 다음 결코 평범하거나 따분하지 않은 경험을 선사한다.”

<노아>가 뉴욕에서 촬영을 이어갈 무렵, 러셀 크로는 호주 배우인 대니얼 스펜서와 9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이혼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1년에 개봉하는 출연작만 6편에 이를 정도로 대부분의 시간을 현장에서 보내는 러셀 크로의 바쁜 스케줄이 이혼에 이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을 거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러셀 크로는 트위터에 이러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다. 올해 내 스케줄이 이렇게 엉망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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