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다시 없을 호텔이다. 배경은 주브로스카 공화국이라는 상상의 동유럽 국가다. 중심은 벨에포크 시대의 때갈을 반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특급 호텔이다. 호텔의 콘시어지 구프타브(레이프 파인즈)는 외로운 귀부인들의 훌륭한 위로자다. 아랍계 이민자인 제로(토니 레볼로리)는 콘시어지의 가르침을 받아 견습사원이 된다. 어느 날 호텔에 투숙했던 80대의 대부호 마담 D(틸타 스윈튼)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구스타브는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히게 된다. 무고함을 입증하고자 탈옥한 구스타브는 마담 D가 유산으로 남긴 걸작 <사과를 든 소년>을 되찾는 과정에서 제로와 함께 세대와 인종을 뛰어넘은 모험을 경험하게 된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최대 화제작이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역대 웨스 앤더슨 영화 중 가장 유쾌하고 대중적이며 장엄한 만듦새가 인상적이다. 개인들의 역사를 개성적으로 파고들던 웨스 앤더슨의 시야가 역사적으로도 넓어진 것은 분명한 변화다. 그만큼 공감대도 넓어졌다. 파시즘, 그리고 이어진 냉전 시대가 양산한 폭력과 문화적 불모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영락은 20세기의 기억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살인사건에서 출발한 미스터리는 어느 순간 문명사적 지평으로까지 확장된다.
화려한 캐스팅도 기대감을 높인다. 앤더슨 사단이던 틸다 스윈튼, 빌 머레이, 윌렘 데포를 비롯해 새로 호흡을 맞춘 레이프 파인즈, 시얼샤 로넌, 주드 로 등 명품배우에다, 프라다 CF에서 만난 적 있던 레아 세이두까지 합류했다. 스쳐가는 조연들까지 모두가 신스틸러일 정도다. 빈티지하면서도 세련된 의상, 가구, 소품들도 심상치 않다. 앤더슨의 전작처럼 스토리는 창의적이며 무대미술은 섬세하고 완벽하다. 웨스 앤더슨 특유의 독창적이고도 장인적인 영상미학의 정점에 놓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화면비율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영화의 리듬은 우아하면서도 스릴 넘치게 전개된다. 체크포인트 감옥, 맨들스 빵집, 미니어처 세트로 지어진 케이블카와 스키 활주로 장면 등도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영화는 낡았지만 매혹적이며, 화려하지만 애수에 젖어 있고, 여유롭지만 긴박한 시대의 공기를 상상해냈다. 이전의 영화들이 달콤하고도 멜랑콜리한 디저트 같았다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다채로운 감성들이 어우러진 만찬 같은 작품이다.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우리를 긴장시키지만, 유머와 관용으로 폭력과 증오를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