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가 처한 입장에 따라 혹은 가치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아가 동일한 행위도 그것이 놓인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정상일 수도 있고 비정상일 수도 있다. 당연히 입고 다녀야 할 옷을 목욕탕 안에서 입고 있으면 ‘비정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고도의 지식이나 복잡한 논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을 떡하니 정부의 주요 목표로 내세운다는 건 이러한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거나 혹은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밖엔 해석할 수 없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간단한 생각을 안 하거나 못한 걸까? 우선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정부와 국민이 동일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정색하면서 묻는 표정이랄까? 혹은 그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있다고 해도 정부의 기준이 ‘옳기’ 때문에 그들도 정부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믿어서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특정한 기준 하나를 옳다고 믿고 다른 기준은 고려하지 않는 태도로 ‘상대성’이나 ‘다양성’이라고 하는 개념이 희박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상대성’과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단 하나의 기준이나 가치에 따라 모든 이들을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독재와 가장 큰 차이점 역시 바로 이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에 대해서 먼저 다양한 입장과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서 소통하고 논의하며, 그렇게 합의된 정상과 비정상이라고 할지라도 다시 입장과 상황을 고려해서 적용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소통과 논의를 통해 ‘합의된 기준’은커녕 ‘일방적인 기준’조차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표현을 접하는데 막상 뭐가 비정상이고 뭐가 정상인지를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경우가 없다.
그 가운데 누가 봐도 명백하게 민주주의에 반하는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은 바로잡히지가 않는다. 또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교과서가 정부 주도로 만들어져 온 사회가 몸살을 앓는다.
정말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이미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정상’을 현실에서 잘 구현해내는 게 합리적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같은 명백하게 ‘비정상’인 상황을 ‘정상’으로 바로잡고, 친일과 독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된 것임을 천명하는 게 그것이다.
북한은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이 명칭을 들으면서 피식 웃게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라고 하는 말 때문이다. 3대 세습과 유일체제로 점철된 북한이 ‘민주주의’라고 하니 웃긴 것이다. 하지만 그 ‘유일체제’에선 그게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인 것이다. 거기에 토를 달면 잡혀간다. 북한정권은 그걸 ‘정상’이라고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