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원산에서 신형 방사포를 쏘았을 때 불과 71km 거리에서는 일본발 중국행 여객기가 지나고 있었다. 이 여객기는 발포 7분 뒤엔 포탄 궤적을 그대로 통과했다니, 아찔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미숙한 것이라면 더 큰 문제다. 나는 진심으로 김정은이 ‘잘하길’ 바라는 동포 중 한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하길’ 바라는 심정과 같다.
자살 도미노라도 벌어지듯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줄을 놓고 있다. 장애가 있는 4살 아이와 함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엄마, 기초생활보장비만으로는 살길이 없다며 함께 숨을 끊은 노부부, 11살 아들을 다리 밑으로 던지고 제 몸도 날린 실직 가장, 내가 죽어야 장애 아들이 지원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며 목을 맨 아버지, 신문에 한줄 나지도 않은 수많은 노인들의 자살…. 이건 명백한 붕괴의 조짐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 중 처음부터 아프고 가난하고 우울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인생의 한 시기 예기치 않은 ‘변수’와 맞닥뜨렸고, 열이면 열, 극단적 빈곤으로 내몰렸다. 국민소득이 아무리 늘어난들 끼니 걱정 없고 몸 누일 곳 있으며 아프면 치료받는, 최소한의 삶의 ‘상수’가 마련되지 않으면 ‘세 모녀’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장안의 선남선녀를 모아놓고 ‘썸씽’을 만들어주던 한 방송 프로그램 출연자가 자살한 이유로 폐쇄적 환경을 꼽은 진단이 많다. 단 몇날 며칠 인위적으로 조성된 환경일지라도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는 가운데 당사자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낙점’되지 않으면 실패이고 ‘패자부활’의 기회조차 없다. 마치 치명적 요소만 모아놓은 우리 사회의 미니어처 같다. 이들은 ‘짝짓기’를 목표로 모였으나 ‘취업’이나 ‘일자리’ 혹은 ‘월급’, ‘정년’ 등으로 바꿔도 무방할 것이다. 비상구도 탈출구도 동아줄도 없는 벼랑 끝 사회에서 제명대로 산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