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론적 관점은 영화분석의 화두 중 하나다. 영화를 바라볼 때 순수하게 텍스트 내부의 요소만을 고려할 것인가, 아니면 감독의 영화세계와 전작까지 고려할 것인가. 영화가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하는 작업이라고 봤을 때 작가론은 그 세계의 문을 여는 유효한 방식이다. 때로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감독의 가치관은 물론 어린 시절의 추억. 심지어 사소한 습관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난해해 보이는 거장의 영화세계가 사소한 실마리를 계기로 단번에 이해되는 통쾌한 경험. 이런 측면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은 실로 재밌고 충실한 안내서다. 이 책은 자서전이지만 자서전 이상이다. 구로사와 감독이 자신의 출생부터 학창 시절, 영화계 입문부터 <라쇼몽>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될 때까지의 삶과 기억을 꼼꼼하게 기록했으니 형식적으로는 완벽히 자서전이다. 하지만 소학교 시절부터 함께한 소설가 우에쿠사와의 우정이나 자신을 영화로 이끈 형의 존재 등 빼곡히 채워진 사적 기록들은 모두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세계로 연결되는 통로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생에 주석을 달아놓은 느낌. 인간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인 동시에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세계 입문을 위한 열쇠꾸러미랄까. 1994년 <감독의 길>(민음사)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한 차례 출판됐던 이 책의 새로운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신의 한수’다.
영화의 주제를 구성할 땐 ‘천사처럼 담대하고’, 디테일을 완성할 땐 ‘악마처럼 집요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의외로’ 쉽고 재미있다. 거장이라는 이름에 주눅들 필요 없다. 구로사와 영화의 두드러진 미덕은 ‘재미’, 그리고 ‘공감’에 있다. 이 책 역시 작품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구로사와의 작품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읽힌다. 동시에 일본영화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충실한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이 한권으로도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바탕으로 보편타당하게 소통했던 구로사와 작품세계의 근본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영화와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