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피하기야말로 궁극의 처세인 것 같다. 자기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덕목이랄까. 가령 친구가 제 자식이 영재인 거 같다며 무슨 학원에 애를 보낼까 말까 의견을 물으면 “보내지 마” 하지만 그럼에도 보내야 하는 이유를 열거하기 시작하면 “음, 그렇구나. 맘가는 대로 하렴” 하고는 자리를 뜬다. 그는 이미 보내고 싶은 거고 자신에게 동의와 지지를 해달라는 것인데, 그럴 순 없으니까. 싫으니까. 피하는 게 상책이다. 최근 양질의 ‘피하기 진수’를 보여준 발언은 서울시장 출마 의향에 대한 노회찬 아저씨의 “박원순 시장의 품질보증기간이 안 끝난 것 같다”라는 답변이었다. 이런 수사, 참 오랜만이다. 잘 피하는 사람은 자기 능력과 여건에 대한 객관화가 잘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영 피치 못할 일이 있다. 내가 꼭 동의하거나 지지하는 게 아니라도 닥치고 힘을 보태야 할 일이 있다. 거액의 손해배상과 가압류에 내몰린 쌍용차 노동자들을 위해 <시사IN> 독자가 애 학원비를 아껴 동봉한다며 손편지와 함께 보내온 4만7천원이 출발이 된 ‘노란봉투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애초 이 독자는 10만명이 4만7천원씩 내면 모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냈는데(아 정말 더럽고 치사해 ‘상징적으로’ 내버렸으면 좋겠다), 모금에 대한 행정적 절차가 복잡해 방법을 강구한 끝에 온라인 펀딩 방식으로 창구를 열었다. 개설 보름 만에 이효리씨가 가세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모금액이 쭉쭉 늘어나, 애초 10분의 1로 소심하게 잡은 1차 목표액 4억7천만원이 머쓱해질 상황이다. 파업 등 쟁의행위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발되는 거액의 민사소송은 우리 사회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다. 그런데 이를 막을 법 개정은 멀고 정치편향적 법리 해석은 판을 치며 해고도 모자라 소송폭탄은 허구한 날 터진다. 먼 산 불구경하듯 둘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