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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긴 떴나봐요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14-02-25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를 연기한 소연, 박지윤 성우

<겨울왕국>에서 안나를 연기한 박지윤 성우, 엘사 역의 소연 성우(왼쪽부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작품과 함께하고 있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겨울왕국>에서 엘사 목소리를 더빙한 소연 성우는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겸손의 말을 먼저 꺼냈다. 1999년 KBS 공채 27기로 데뷔해 14년차를 맞이한 그녀도 이번 작품처럼 열광적인 반응은 접한 적이 없다. “연락이 뜸했던 친척들이나 지인들에게 연락이 와서 ‘잘 봤다’는 말을 들을 때 실감했다.” 안나 목소리로 데뷔 이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일부 팬들 사이에서 ‘갓지윤’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박지윤 성우 역시 감사의 말을 먼저 꺼냈다. “요즘은 인터뷰하느라 일을 못하고 있다. (웃음) 오빠와 남동생이 모두 영화계에 있는데 <씨네21> 인터뷰를 한다고 했더니 뜨긴 뜬 모양이라고 하더라.”

언론에 본격적으로 노출된 건 <겨울왕국>이 계기였지만 사실 두 사람 모두 성우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진작부터 알려진 인기 성우다. 이른바 광역계(목소리 연기 폭이 넓은 배우)로 알려진 소연은 그간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니코 로빈, 게임 <스타크래프트2>의 사라 캐리건 등 이지적이고 차분한 캐릭터부터 <로보카 폴리>의 어린 소녀 목소리까지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다. <겨울왕국>에서 겉으로는 차갑지만 불안한 내면을 지닌 얼음여왕 엘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던 건 그같은 오랜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디션 제의를 받고 데모 녹음을 하는데 부분 장면이었는데도 너무 흥미롭더라. 간혹 영어 버전보다 더빙에서 여왕의 차가운 카리스마가 더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는데 성우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KBS 공채 31기로 데뷔한 박지윤은 안나 역할에 유독 욕심이 났었다며 오디션 순간을 회상했다. “오디션용 영상은 작은 화면에 화질도 떨어지는데도 재밌더라. 그냥 예쁜 공주가 아니라 코도 골고 혼잣말도 하고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캐릭터 분석에 좀더 공을 들였다.” 오디션을 마친 후 성우인 남편에게 흥행할 것 같은 작품을 만났다고 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고. 지난해 4월 둘째를 출산한 그녀는 같은 해 아버지(고 박용식)를 여의고 한참 무기력한 상태였을 때 이 작품을 만났다고 한다. “신인 때부터 함께 작업하며 많은 도움을 주신 박원빈 스튜디오 감독님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캐스팅에 응했는데 도리어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준 선물 같은 작품이다. 배우이셨던 아버지가 처음엔 내가 성우를 하겠다는 걸 계속 반대하셨는데 지금 이런 모습을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더빙판과 자막판, 취향의 문제

박지윤은 목소리 더빙뿐만 아니라 노래 연기에도 함께 캐스팅되어 팬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노래 오디션도 한번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네!’라고 했다. 씩씩한 모습이 더 안나 같았다고 하더라. 안나가 부르는 노래는 <Let it go>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실 박지윤은 성신여대 성악과 출신으로 노래와 연기를 겸비한 성우 중 한 사람이다. 엘사 역의 소연 역시 성우 데뷔 전 3년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데뷔한 경력이 있으며 몇몇 작품에서는 직접 삽입곡을 부르기도 했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코러스로 미국 LA 공연에도 참여한 소연의 뛰어난 노래 실력은 팬들 사이에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소연에게 엘사 역의 노래를 직접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는데 <Let it go>를 들어보고 이건 내 선에서 안 되겠다 싶어서 아예 오디션을 보지 않았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욕심 부릴 필요 없다. 할 수 있는 부분을 완벽하게 하는 게 프로다운 것”이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원작을 뛰어넘는 더빙이라는 찬사의 이유가 보이는 것 같았다.

자막 버전을 본 성인 관객도 다시 더빙 버전을 볼 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평에 대해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소연은 “국내는 더빙이 아동용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사실 더빙은 더빙만의 매력이 있다. 일단 자막을 봐야 하는 불편함이 없으니 화면에 좀더 집중할 수 있고 성우가 부여한 색다른 캐릭터를 접할 수도 있다. 정서적 현지화라고 해도 좋겠다”라며 더빙을 제2의 창작으로 봐줄 것을 당부했다. “적어도 자막과 더빙에 대한 선택권은 있었으면 좋겠다. <겨울왕국>도 더빙판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완성도가 아닌 취향의 문제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라는 박지윤의 지적은 무조건적으로 자막을 선호하는 국내 애니메이션, 나아가 영화계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겨울왕국>의 흥행으로 바빠졌을 거라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의 스케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바빠지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겨울왕국> 이전에도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소연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경우 대략 3, 4시간 정도로 한 작품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대신 TV애니메이션 더빙, 방송 내레이션, 광고 등 짬짬이 시간을 쪼개 꾸준히 일을 맡는 편”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역시 더빙 연기를 할 때가 제일 즐겁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봉 시기가 겹치면서 <다이노소어 어드벤처 3D> <겨울왕국> <레고 무비> 등 여러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출연했지만 아무래도 극장판 더빙은 단발성 작업인 만큼 당장 직접적인 변화를 체감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박지윤도 마찬가지다. 올해만 해도 이미 <겨울왕국>과 <디노타샤: 공룡대탐험>을 개봉했고 <넛잡: 땅콩 도둑들> <어네스트과 셀레스틴> 등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한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여러 목소리를 연기하며 성우 박지윤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자고 일어나니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어 있더라.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느낀다. 무엇이 계기가 됐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성우의 가치와 매력을 알리고 싶다”라는 그녀는 현재의 성취가 아니라 벌써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성우의 핵심은 더빙 연기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지만 그래도 성우의 핵심은 더빙 연기라는 데에는 두 사람 모두 이견이 없었다. <겨울왕국>의 말괄량이 공주 안나와 <어네스트과 셀레스틴>의 생쥐 셀레스틴을 연기한 박지윤은 캐릭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많은 분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대중적인 연기를 가다듬긴 하지만 작품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안나를 연기할 때는 공주가 되고 셀레스틴을 연기할 땐 생쥐가 된다. 그 과정이 재밌는 거다. 실사영화 중에는 아만다 시프리드 역할을 자주 맡았는데 지금도 그녀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 언젠가는 내게 역할이 돌아올 것 같아서 괜히 몰입되고 따라하게 된다.” 소연에게는 키라 나이틀리가 그런 배우다. “내가 언제 키라 나이틀리가 되어보겠나. (웃음) 실사 더빙은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원래 캐릭터 이미지가 구체적일수록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요즘엔 외화 더빙도 줄어들고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쉽다”라며 다양한 연기 도전에 대한 열망을 밝혔다.

소연과 박지윤 성우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둘 다 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엄마라는 사실이다. 소연은 “성우는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프리랜서인 만큼 시간조절이 가능한 전문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라고 하자 박지윤은 “예전에 서혜정 선배님이 ‘성우는 동심의 세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영혼이 맑다’고 하신 말씀이 이제 이해가 된다”라며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성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만 세살이 안 된 박지윤의 큰아들은 이번 <레고 무비>에서 목소리 더빙에 참여했는데 그녀는 “그 또래의 아이 목소리가 필요하다길래 함께 녹음했다. 너무 기특해서 방에 포스터도 붙여놨다. 만약 아이들이 커서 성우가 된다고 해도 반대하진 않을 것 같다”라며 애정을 표시했다. <겨울왕국>의 사랑스런 두 자매가 ‘성우왕국’을 지킬 스타로 자리매김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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