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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바디무비] 왼쪽으로 달리는 게 안전해
김중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일러스트레이션) 2014-02-20

오른눈잡이 K, 야구에서 인류 진화의 힌트를 발견하다

어릴 때부터 시력이 꽤 좋은 편이었다. 한창일 때는 1.5와 2.0 사이를 왔다갔다했고, 중간에 잠깐 1.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있었지만 군대에서 오랫동안 경계 근무를 하다보니 시력이 다시 좋아졌다. 시력이 다시 좋아질 수 있다고 얘기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직접 경험했다. 먼 곳에 있는 녹색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컴퓨터나 책을 멀리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눈이 좋아질 수 있다. 최근 내 시력은 1.0과 1.2 사이쯤 어딘가에 있다.

눈이 좋던 어린 시절부터 안경 쓴 사람을 무척 부러워하곤 했는데(어릴 땐 별게 다 부러운 법이다) 요즘엔 나도 안경을 쓰고 있다. 시력은 좋지만 난시 때문에 눈이 빨리 피곤해져서 안경을 써야 눈의 피로를 줄일 수 있다. 안경 쓴 사람을 부러워하던 어린이답게 안경점에 가서 시력 검사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 “자, 턱을 고정시키고 화면을 보세요. (네, 했어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아니 실제 그림인 집이 보이시죠? (네, 보여요.) 이렇게 하면 더 잘 보이세요? (네, 그러네요.) 이렇게 하면요? (아까가 더 잘 보였어요.) 이렇게 하면요? (비슷한데요?) 자, 이번에는요?” 하면서 안경점 직원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무척 섬세한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화면이 흐려졌다 명료해졌다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면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얼마 전 안경점에서 시력검사를 하며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다가 “오른눈잡이시네요”(전문용어로는 ‘오른쪽 우세안’)라는 말을 들었다. 생소한 단어였다. 오른손잡이나 오른발잡이는 들어봤어도 오른눈잡이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안경점 직원의 말에 따르면 주로 쓰는 팔과 다리가 있는 것처럼 눈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오른쪽 눈이 주로 보고 ‘왼쪽 눈은 거들 뿐’이었다. 간단한 테스트로 어느 쪽 눈을 주로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는데, 왜 오른쪽이 우세안이 되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차이는 뇌 기능 차이와 유전적인 영향일 거라고 보지만 우세안을 결정하는 요소는 밝혀진 바가 없다. 우세안과 시력과도 관계가 없다. 나의 경우 오른쪽 우세안이지만 왼쪽 눈의 시력이 조금 더 좋다.

인간은 좌우대칭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눈도 두개, 콧구멍도 두개, 손도 두개, 다리도 두개인데, 심장은 하나다. (박지성은 정말 두개인가?) 위와 간도 하나씩이다. 심장과 위는 왼쪽에 있지만 간과 맹장은 오른쪽에 있다. 인간이 (곤충처럼) 완벽한 좌우대칭이 되기 위해서는 몸의 한가운데 심장과 위와 간이 일렬로 늘어서야 하는데, 그 모습은 상상만 해도 기괴하다. 그러려면 상체가 특히 길어져야 할 테고, 내장을 모두 쌓기 위해서는 사람들 키가 190cm는 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비효율적이다.

인간의 심장이 한쪽으로 몰린 것은 척추동물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내장의 구조와 외면의 형상이 다른) 인간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야구의 원리가 떠오른다. 야구야말로 인간의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야구장의 모습은 인간의 외면처럼 완벽한 좌우대칭이다. 1루와 3루 사이에 2루가 있고, 좌익수와 우익수 사이에 중견수가 있다. 홈플레이트는 맨 아래쪽 한가운데 있다. 경기장 위에서 내려다보면 완벽한 대칭이다. 축구나 배구나 농구나 테니스 경기가 대칭으로 이뤄지는 반면 야구 경기는 대칭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선수들은 1루로 출루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아 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인간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뛰는 걸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그럴듯한 것은) 심장이 왼쪽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심장을 중심축으로 두고 돌아야 안정감 있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 때는 선수들을 시계방향으로 달리게 했다. 시합을 끝낸 육상 선수들은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며 조직위원회에 거세게 항의했고, 그 다음 대회부터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뛰는 걸로 경기의 규칙이 바뀌었다. 스키를 배울 때도 이런 본능을 느낄 수 있다. 왼쪽으로 회전하는 건 쉽지만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건 쉽지 않다. 어쩐지 불안하고 곧장 넘어질 것 같다. 야구를 처음 만든 사람도 아마 이런 본능에 의해 룰을 정했을 것이다. 오랜 습관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3루 방향으로 출루한 다음 시계방향으로 움직여서 홈으로 돌아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다.

야구 경기가 인간의 몸과 닮기도 했지만 야구 경기에는 인류 진화의 모티브가 들어 있기도 하다. 진화 생물학자 윌리엄 캘빈은 직립보행을 하고 언어로 소통하며 커다란 두뇌를 가진 최고 영장류라는 인간의 위치가 ‘던질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힘 없고 백 없던’ 현생인류 이전의 조상들이 다른 동물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던지기’였으며, 던지기 위해서는 두발로 서야 했다는 것이다. <더 볼>의 저자 존 폭스는 윌리엄 캘빈의 글을 인용하며, 인류는 던지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좌뇌 편측화(특정한 기능이 두뇌의 한쪽에서 더 자주 발생하는 현상)가 이뤄졌고, 점차적으로 언어 및 도구를 사용하며 진화하게 됐다는 가설에 동조하고 있다.

인간이 던지는 힘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가설을 믿고 싶긴 한데, 아무리 봐도 무언가를 던지는 일은 인체 구조와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팔은 어깨 아래에 달려 있고, 팔꿈치는 안으로만 굽을 수 있고, 손톱은 무척 빨리 자란다. 무언가 던지기 위해서는 근육과 인대와 관절과 뼈에 엄청난 부담을 줄 수밖에 없고, 무리를 하게 되면 곧바로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야구 경기에서 선발 투수는 100개 정도의 공을 던지고 나면 급격하게 힘이 빠진다. 돌멩이를 던져서 사냥하던 인류 조상들의 투구 수는 대략 몇개였을까. 우린 얼마나 진화한 것일까. 궁금하다.

그러고 보면 고릴라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는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처럼 인류 진화의 비밀을 풀고자 하는 야심 넘치는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농담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빅뱅과 블랙홀과 공룡을 등장시키며 인류의 진화를 섬세한 영상으로 표현해냈는데, 공룡 장면 다음쯤에다가 돌멩이를 던져 작은 토끼를 사냥하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넣었으면 좀더 멋진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공상해본다. 그랬다면 브래드 피트가 <트리 오브 라이프> 다음으로 주연을 맡았던 <머니볼>과도 연결이 되고 딱 좋았을 텐데 말이다. 테렌스 맬릭 감독님 죄송합니다. 농담입니다.

시력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야구와 시력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면, 야구는 안경을 착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 중 하나다. 안경을 낀 축구 선수나 농구 선수는 (아예 없진 않지만) 상상하기 힘든 반면 안경을 낀 야구 선수는 쉽게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었던 최동원 선수도 금테 안경으로 유명했고, 롯데의 조성환 선수 같은 경우는 교정용 안경을 착용한 첫 타석에서 3점 홈런을 친 것으로 유명하다. 야구는 계속 움직이기보다 뚫어지게 보고 멈춰 생각하고 많이 고려하다가 기회가 왔을 때 있는 힘을 다하는 스포츠다. 보는 눈이 무엇보다 중요한 스포츠다. 어쩌면 미국 사람들이 유독 야구를 좋아하는 것도 이런 속성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야구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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