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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금태섭(변호사) 2014-02-20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 현대문학 펴냄

중국에서 태어나서 문화혁명을 겪고 프랑스로 건너가 작가 생활을 하는 다이 시지에의 이 자전적 소설은 우리를 실제로 있었으면서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세계로 데려간다. 모두가 알 듯이 1968년 말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이자 혁명의 기수인 마오쩌둥 주석은 나라를 일대 변혁하는 운동을 벌인다. 모든 대학이 휴교하고, 중/고등학교를 마친 ‘젊은 지식인들’은 농민들로부터 재교육을 받기 위해서 농촌으로 추방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10대 소년이 바로 이런 상황에 놓였다. 의사 아버지를 가졌다는 이유로 ‘인민의 적’으로 분류된 이들이 재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은 ‘3퍼밀’(1000분의 3). 말하자면 끝내주게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남폿불을 밝히는 산골에서 인생을 마칠 것이 거의 확실한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까지 부르주아적인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몰래 숨겨온 바이올린을 처음 본 촌장이 도시의 장난감이라며 불태워버리려고 하자, 모차르트의 소나타가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라는 뜻이라며 하소연하는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유일한 즐거움이라면, 영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촌장 덕에 한달에 한번씩 걸어서 이틀 걸리는 용징에서 영화를 보고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구연을 하도록 허락받은 일뿐.

‘혁명 농민들’의 감시 아래서 지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주인공들은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정열을 바칠 대상을 찾아낸다. 10대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책과 여자아이. 그들은 도둑질까지 불사해가며 발자크와 로맹 롤랑, 뒤마의 책이라는 보물을 얻는다. 마침 동네 재봉사의 딸과 사랑에 빠진 한 소년은 그렇게 구한 책을 여자아이에게 읽어준다. 단지 예쁘기만 한 시골 처녀를 ‘세련되고 교양 있는 여자’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결말은? 바느질을 하던 여자아이는 대도시로 떠나버리고 소년은 사랑을 잃는다. 부르주아 애인에게 남긴 그녀의 마지막 말은, “발자크 때문에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 깨달았다”였다.

대장정을 성공시킨 혁명의 상징 마오쩌둥 주석도, “당신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소. 사랑하는 여인은 매번 우리로 하여금 양식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게 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소”라는 말을 써대는 발자크에게 도저히 당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골짜기의 백합>에서 인용). 이 사랑스러운 소설을 읽는 동안 유일하게 찝찝한 느낌을 갖게 되는 대목은, 심지어 이 시절에도 주인공들이 볼 수 있었던 북한영화 <꽃 파는 처녀>를 우리는 아직도 못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때다. 십대 소년의 눈에 “다시 볼 필요가 없는 시시한 북한의 신파극”으로 비치는 영화가 아직도 우리에게는 위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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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