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기간입니다. 저도 이제 마흔을 넘겼기에 하계, 동계 포함해서 십수 차례 올림픽 개회식을 봤습니다만 여전히 알쏭달쏭합니다.
저 사람들은 왜 저기서 하얀 천을 들고 뛰어다니는지, 왜 저기서 저렇게 단체로 굴러다니는지 방송국 아나운서나 어느 대학교 교수님의 해설을 들어봐도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개막식뿐만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올림픽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좀더 세부적으로 말씀드리면 ‘올림픽 선수들에 대한 언론의 태도’입니다. 올림픽이 열릴 때면 TV나 신문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뜨겁습니다. 용광로에서 막 꺼낸 듯이 시뻘건 열기가 뿜어져 올라올 듯합니다. 태극전사, 낭자군단, 대첩, 승전보, 부상투혼 등. 단어로만 보며 멀리 적지로 떠난 병사들의 전투소식을 들려주는 듯합니다.
국가대표들이 외국에 나가 시합할 때 마치 전투상황을 중계하듯 종군기자처럼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표현이라고 합니다. 내선일체를 고취시키기 위해 스포츠만 한 것도 없었던 것이지요. 스포츠를 국내의 복잡한 정치 문제를 덮어버리는 용도로 사용했던 정치권과 기업과 방송국한텐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기에 이러한 경향은 더 짙어졌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도 없습니다. 운동선수의 시합은 이 사회에선 일종의 공공재이거든요. “1승 전선 이상없다. 태극전사 준비완료.”(1994년 6월13일자, <한겨레>, 94년 미국월드컵 관련해) “태극전사 무조건 이겨야. 지옥의 강훈.”(1994년 9월2일자, <동아일보>,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관련해) 기사검색서비스인 카인즈에서 ‘태극전사’라는 키워드만으로 2만여개의 기사와 사설이 나옵니다. 뭐, 어쨌든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국민적 영웅이 되고 네이버 검색어 1위가 될 수도 있고 포상금, 연금, 취업보장, 광고모델에 때로는 라면 100상자(!)까지 받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혜택은 오직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만 해당됩니다. 좋은 성적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또는 그 기준을 뛰어넘은 것을 말하지요. 즉, ‘금메달’을 의미합니다. 그러다보니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에겐 위로를 보내는 진풍경이 연출됩니다.
메달을 딴 선수가 금의환향 기자회견을 할 때 그러지 못한 선수들은 자리도 배정받지 못한 채 ‘입석 기자회견’을 할 때도 있고 최고 지도자가 직접 하사한 퍼레이드라는 성찬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여 광화문을 뙤약볕 아래 흰 양복을 입은 채 행진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목발을 짚은 채 말이죠. 자신의 인생에 영구히 남을 수 있는 부상을 무릅쓰고 시합에 임해야 합니다. 그가 만약 좋은 성적을 내면 취재진은 그의 집으로 몰려가 온갖 개인사를 헤집습니다. 불우하거나 애틋했던 개인사는 그의 화려한 성공과 대조를 이루어 감동을 전하는 뉴스 배경으로 사용됩니다. ‘프로레슬러’라는 ‘비인기 종목 운동선수’의 개인적 입장이 가득한 글 좀 올려봤습니다. 부디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