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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소더버그의 여섯 공범들 [7] - 돈 치들

낯익은 무명, 혹은 숨겨진 보물, 배셔 타르

“<오션스 일레븐>이 소더버그 감독과 당신의 세 번째 작업입니다. 어떤 점이 새로웠습니까?” “저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인 줄 알고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세트에 가서 제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기자를 일순 당혹시키는 돈 치들은, 내내 연기에 감탄하다가도 막상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면 이름을 확인하는 것을 깜박 잊기 일쑤인 배우 중 하나다.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Arts)에서 고전적으로 훈련받은 연기자인 돈 치들은 1985년 <무빙 바이올레이션>을 필두로 많은 영화와 TV시리즈에서 중량급 조연을 전담했다. 만약 치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면 <덴버> <블루 데빌> <부기 나이트> <페일 세이프> <스워드피쉬>가 당신이 언젠가 보았을 법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조지 클루니의 표적>의 인상적인 소악당과 <트래픽>에서 정의와 동료의 생명을 짓밟은 마약 밀매 조직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마지막 순간 고단한 희망이 어린 미소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형사가 바로 돈 치들이다.

눈 밝게도 그를 발견한 팬들이 치들에게 붙여준 애칭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은닉된 보물”. 20년 가까이 관객과 비평가에게 경탄과 만족을 안겨주고도 아직 사인공세에 시달릴 염려없이 동네 슈퍼마켓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편하고도 쓸쓸한 사실은 돈 치들의 주요한 농담 소재다. <로즈우드>(1997)가 발표된 무렵에는 한 잡지가 오스카 특집호 기사를 준비한다며 그에게 사진작가와 기자를 보내기도 했다. “노미네이션도 나오기 전인데 뭘 믿고?”라는 치들의 물음에 기자들은 “우리만 믿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는 결국 후보지명을 받지 못했고 그 때문에 사흘쯤 우울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치들은 그가 대체 왜 후보에서 제외됐나 반문하는 사람들과 매체를 상대하느라 진땀을 뺐다. “나는 무시당하느라 더 바빴다”는 것이 그의 시니컬한 진술. 과연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같은 <오션스 일레븐>의 공범들이 화려한 존재감을 지워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동안, 돈 치들은 대중에게 존재감을 남기기 위해 고투해왔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치들이 분한 폭파 전문가 배셔 타르는 맞춤형의 폭발(“뭘 원해 정전? 암흑? 아수라장?”)을 ‘납품’함으로써 마음먹은 대로 만인의 주목을 받는다는 점에서 마치 돈 치들의 잠재의식이 불러낸 네메시스 같다. HBO채널이 제작한 <랫 팩>에서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역으로 분해 골든글로브를 수상하기도 한 돈 치들은, 감독의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배셔 역을 애초 설정대로 런던 토박이 억양으로 연기하겠노라 우겼다. 런던에도 흑인이 사는 바에야 11명 캐릭터 팔레트에 또다른 색깔을 보탤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시스템의 혁신이라기보다 트렌드의 변화에 의해 이제 흑인이 깡패 역만 맡던 시대는 갔고 돈 치들은 윌 스미스, 웨슬리 스나입스, 새뮤얼 L. 잭슨 다음으로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받는 흑인배우가 됐다. 그러나 치들은 여배우에게 성을 의식하지 않은 연기를 요구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듯, 인종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스튜디오들이 제작편수를 줄여 가는 최근 상황에서 배우로서 삶이 결코 쉬워지지 않으리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를 더욱 듬직하게 만드는 것은 건조한 유머와 여유. “스티븐이 진짜 재능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그냥 무명씨들뿐인 점이 아쉽다. 그러나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돈 치들의 <오션스 일레븐> 총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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