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꼬박꼬박 했는지를 색칠하게 돼 있는 아이의 겨울방학 숙제항목은 네 가지였다. 독서, 운동, 선행, 복습. 가까운 학부모들과 “무슨 초등 1학년이 선행이냐”라며 격분했고, 의식적으로 그 항목을 색칠하지 않고 제출하게 했다. 알고 보니 그 선행은 앞당겨 공부하라는 선행이 아니라 착한 일 선행이었다. 학부모로서 ‘과잉 피해의식’이 불러일으킨 민망한 사연이다.
윤여준 아저씨는 우리 사회의 ‘이념 과잉’이 문제라는 얘기를 해왔다. 과잉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익이다. 말도 안 되는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유지되는 것도 잘되면 그것이 내 이익에 가장 크게 부합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로또 정치이다. 이익이 이념의 외피를 쓰는 게 문제이지, 생존권 투쟁이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정책이든 국가의 책무에 대한 합의이든 이념이 깔려 있어야 설득력 있고 지속 가능한 힘을 발휘한다.
집권 세력은 이념을 쳐서 이익을 얻으려는 ‘이념 프레임’에만 집착한다. 종북몰이가 대표적이다. 정작 이념이 있을 자리는 애 하나 낳은 사람은 반성하라거나 박심이 누구에게 있는지 우겨대는 식의 말초적인 얘기들이 차지해버렸다. 야권에서는 패거리주의와 정치적 흥정이 이념 경쟁을 밀어냈다. 이에 대한 염증이 새정치에 대한 일종의 팬덤을 일으켰는데 그것이 새정치를 하려는 분들에게 엉뚱한 처방을 내놓게 하는 것 같다. 덜 이념적인 표현과 행보를 이어가려다보니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논쟁과 싸움에서 한발 떨어진 명망가들의 전국순회 사교활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되지도 않을 법무장관 해임안 따위를 내는 무책임한 행보 대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에 관여한 여당 의원이 누구인지 까는 게 더 책임 있는 이념의 구현이다. 칼을 쳐야 보습을 만들 게 아닌가. 언제까지 보습마저 녹여 칼을 만들려는 이들의 이익추구놀음에 끌려다니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