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이 되면 우리는 어떤 기계로 음악을 듣고 있을까? 아이폰30? 갤럭시Z2? 아니면 스마트폰을 능가하는 새로운 판도라의 상자라도 나올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미래란 ‘장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니까. 하지만 상상해보자. 우린 잠시 뒤의 미래에 어떻게 음악을 듣고 있을지. 일단 작게나마 확신할 수 있는 건 앞으로 음악계가 더욱더 모바일과 스트리밍 중심으로 흐를 거라는 점이다. MP3가 ‘음반’에서 ‘파일’로의 변혁을 이뤄냈다면 스마트폰은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의 변화를 주도했다. 이젠 다운받은 파일을 재생하는 속도나 LTE 모바일로 연결해 실시간으로 로딩하는 속도나 별 차이가 없어졌다. 굳이 용량만 차지하게 다운로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아이튠즈에서 스포티파이로 대세가 이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멜론이 ‘무제한 스트리밍 정액제’를 보편화한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음악의 단가가 급격히 하락하므로 ‘저작권 장사’ 시대는 막을 내리는 것이다. 물리적 실체로 소유하지 않는 것에 많은 돈을 지불할 이는 없다. 흘러가는 전자파를 잠시 빌려 쓰는 것에 음반 값을 낼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음악의 단가는 싸지고 사람들은 그 싼맛에 저품질의 음질을 감수하고 들을 것이다. 음반을 사는 것보다는 헤드폰을 사거나 공연장을 가는 데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유튜브적 콘텐츠의 경쟁
그렇다면 이것은 한류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류는 (지금도 약간 그런 측면이 있지만) 대규모의 해외 투어를 돌 수 있는 자본력을 가진 대형 기획사들의 월드 투어 중심이 되지 않을까. 그게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일이니 말이다. 공연 시장과 스마트폰 기반의 IT 시장이 같이 성장하니 ‘공연 스트리밍’이 새로운 황금알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스마트폰 기술이라면 공연 영상 정도는 초고화질로 쉽게 손안에 전송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음악계를 쥐고 흔들 것으로 예상되는 또 하나의 주역은 ‘유튜브’다. 2030년에는 유튜브를 능가하는 훨씬 빠르고 편리한 인터페이스의 웹사이트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대강의 얼개는 비슷할 것이다. 짧고 재밌는 영상의 편리한 공유 말이다. 유튜브는 일반 TV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하고 자극적인 영상들을 제공해 급속도로 영향력을 키워왔다. 그리고 이제는 지상파의 영향력을 뛰어넘어 최고의 홍보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해외에 진출하려면 음원을 공급할 메이저 배급사와 계약하고 네트워크 TV 출연을 따오는 것이 중요하지만, 언젠가는 음악 자본들이 서로 유튜브의 지분을 확보하려고 공격적 투자를 감행할지 모른다. 유튜브에 커다란 입김을 가짐으로써 자사의 음악을 유리하게 홍보할 수 있고 클릭에 따른 광고 수익도 가져가기 위함이다. 싸이가 빌보드 2위라는 기적을 이뤄낸 것처럼, 로엔이 유튜브를 인수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콘텐츠도 더욱 유튜브적으로 변할 것 같다. 유튜브에서 역대급으로 사랑받은 영상들은 대개 ‘재밌는’ 것들이거나 ‘와우~’ 소리가 나올 만한 파격적인 것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친구에게 얼른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고, 그렇게 수도 없이 공유/복제되면서 해당 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바우어의 <할렘 셰이크>가 모두 이 길을 걸었다.
그렇다면 평범한 콘텐츠로는 승부가 안 날 것이다. 뮤직비디오와 비주얼 컨셉이 지금보다 더 자극적으로 변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꼭 ‘노출’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크레용팝처럼 ‘웃기는’ 가수들, 싸이처럼 ‘멘붕’을 주는 가수들, 빅뱅/2NE1처럼 ‘하이엔드’ 패션과 파격적인 ‘언더그라운드’ 컨셉으로 승부하는 한류 가수들이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 근 몇년 안에 공격적 해외 진출이 가능한 회사들이 대부분 대형 아이돌 기획사들임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한류는 기존의 뻔한 아이돌 티를 벗은 파격 컨셉 아이돌의 시대가 될 것 같다. 거대한 ‘레킹 볼’(Wrecking Ball, 건물 철거용 쇠공)에 나체로 올라타 쇠사슬을 혀로 핥는 퍼포먼스를 벌인 마일리 사이러스가 트위터와 인터넷 가십을 통해 대대적 성공을 거둔 것은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녀가 미국 지상파에선 감히 상상도 못할 마리화나 흡연을 네덜란드 TV에서 버젓이 자행하고 역시나 화제의 주가를 올렸다는 것도 다들 알 것이다. 한류도 이들에 맞게 ‘비방용’, ‘19금’, ‘파격’, ‘유머’의 비중이 좀더 늘어날 것 같다.
프로듀서도 한류?
또 하나 그려보는 2030년 한류의 모습은, ‘프로듀서 한류’다. 요즘은 음악 만들기가 정말 쉬워졌다. 큐베이스, 로직, 에이블톤 등의 미디 프로그램이 전에 없이 많이 보급됐고, 인터넷 덕분에 이것들의 크랙 파일들이 수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젠 스튜디오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도 히트곡을 쓸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한때는 아무리 곡을 잘 써도 사운드에 밀려서 해외와 비등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프로그램들이 좋아져서 사운드도 큰 차이가 없어졌다. 더욱이 자신의 작업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공유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서 히트 프로듀서의 사운드 비밀이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되고 있다.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사운드와 편곡 아이디어의 평준화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예전엔 아무리 곡을 잘 쓰는 프로듀서라도 노래하는 것은 가수였기 때문에 프로듀서가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열풍 덕분에 ‘디제이’로서, ‘파티 주최자’로서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노래를 하지 않고도, 직접 연주를 하지 않고도, 세계 투어를 돌며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많은 프로듀서들이 디제이 겸업을 선언하고 파티를 주최하고 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빌보드 차트에 몇번 올라보지도 못한 EDM(Electronic Dance Music)이 어떻게 그 많은 페스티벌을 꽉꽉 채우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을까?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고, 누구나 그 음악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공유하며, 이것을 페스티벌로 엮어서 즐길 수 있는 공연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EDM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디제이가 아닌 프로듀서 지향의 디제이들이며, 이것은 앞으로의 음악계에 본보기가 되어 많은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한다. 프로듀서 한류 스타,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