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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팬문화가 만날 때

한류의 새로운 플랫폼에 대해: K-POP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유튜브 싸이 <강남스타일>.

세계 속 한류에 대해 몇 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알려져 있어도 그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않은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한류 현상이 시작된 동아시아와 그외 지역에서 한류 콘텐츠의 유통 플랫폼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에서의 한류가 텔레비전이라는 각국의 지배적 매체의 매개 과정을 통해 유통되었다면, 세계 속 한류 현상에서 제도권 미디어의 역할은 훨씬 덜 중요하다. 이것은 아직 공중파에서 한국 드라마가 한번도 방송되지 않은 헝가리 서쪽, 서유럽의 경우에서 가장 극단적 사례를 관찰할 수 있다(이 글에서는 한류의 핵심 콘텐츠인 드라마와 K-POP에만 초첨을 맞추어 논의하도록 한다). 둘째, 한류 현상의 핵심을 이루는 드라마와 K-POP은 유통경로와 유통방식,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K-POP은 리듬앤드블루스, 랩, 일렉트로닉 댄스음악 등 미국과 유럽의 대중음악을 통해 전세계인의 귀에 익숙해진 문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유니버설한 언어인 뮤직비디오의 현란한 색채와 움직임을 통해 한국어라는 언어의 장벽이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는다. 유튜브와 아이튠즈 등 편리한 플랫폼을 통해 빠른 시간 내에 전세계적인 유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남스타일>의 빠른 성공이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드라마의 경우 제도권 방송이라는 강력한 매개자가 자막을 단다거나 더빙을 하는 매개 작업을 해주지 않는다면, 언어의 지역적 한계를 넘는 유통은 지난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K-POP만의 팬덤 문화 현상

K-POP은 듣기만 하는 음악이 아니라 듣고 보는 음악이라는 남다른 특성을 지녔다. 유튜브에 새롭게 업로드되는 알록달록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의 뮤직비디오 수는 양적으로 많고, 그것과 더불어 팬들이 생산하는 리액션, 플래시몹 비디오도 K-POP 관련 엔트리 수를 높여주고 있다. 소속감에 목마르고 정체성 찾기에 급급한 청소년기에 따라 부를 노래를 공유하고, 함께 동일한 동작의 춤을 추는 것은 강력한 소속감과 정체성 형성의 도구이다. 세계 K-POP 팬들의 반응을 관찰해보면, 이들이 K-POP에 끌리는 이유는 음악 콘텐츠의 특성도 있지만 K-POP의 팬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K-POP 수용자들은 한국의 팬덤과 아이돌 스타와 그룹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팬문화의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 열기와 에너지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K-POP 아이돌들은 유명해지면서 팬들로부터 멀어지는 서구의 스타들과 달리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고, 팬들이 보낸 선물이나 액세서리를 하고 방송에 나온다. K-POP이 단지 콘텐츠의 유통으로 유지되는 내용이 아니라 팬문화의 공유가 열기와 지속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앞으로 K-POP 한류의 지속에 공식 음반유통 사이트와 아이튠즈 같은 음악다운로드 플랫폼과 더불어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여전히 중요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싸이의 성공으로 가시성이 높아진 K-POP의 세계 속 유통에 방송 또한 한몫하리라 생각된다. 각국 텔레비전의 뮤직비디오 차트로의 진입은 쉬운 일이 아니겠으나, 전세계의 수많은 음악전문 채널들은 향후 K-POP 뮤직비디오를 세계 대중음악의 트렌드로 정당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강남스타일>이 유행일 때 <K팝 스타>와 유사한 형식의 프랑스 텔레비전의 대중음악 콘테스트에서 동아시아 대중문화 팬이라는 청년이 <강남스타일>을 록으로 편곡해 부르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는데, K-POP은 이미 전세계의 수많은 곳에서 음악을 하는 청년들의 레퍼토리가 되어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고, 이러한 지역 매개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정당화 과정을 걷게 될 것이다.

드라마를 포함한 방송 콘텐츠의 경우, 유통의 제약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유통 플랫폼 문제는 기술적이라기보다 ‘문화적’이다. 국내의 시청자들은 실시간 시청의 제약과 비싼 VOD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pooq’나 ‘tiving’의 N스크린서비스나 IPTV의 통합서비스를 이용하는 스마트폰 시청 등 새로운 기술의 플랫폼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음이 관찰되는데, 방송이 한류 콘텐츠의 적극적 매개자인 동아시아 또는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도 속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이러한 스마트 텔레비전을 이용한 서비스가 한류 방송콘텐츠의 미래의 플랫폼이 되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드라마파시용’ 홈페이지.

드라마 수용자를 위한 새로운 전략

그러나 한국 드라마는 각국의 방송이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팬들의 국경을 넘는 팬자막 달기 활동을 통해 유통되었기 때문에, 인터넷의 팬사이트들은 여전히 중요한 플랫폼으로 남을 것이다. 한국의 방송사들도 이러한 인터넷을 통한 드라마 유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튜브 채널에 방송 직후 주요 클립을 올리는 등 공격적으로 프로모션하고 있으며, ondemandkorea.com이나 tvbogo.com과 같은 방송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터넷 포털과 계약을 체결, 한국 방송콘텐츠 탑재를 합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자막이 달리지 않은 ‘원자료’(raw)일 뿐, 절대다수의 세계 수용자가 이해하며 즐길 수 없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유럽의 경우, 2010년에 문을 연 유일한 드라마 VOD 사이트인 ‘드라마파시용’(Dramapassion)이 생겼을 때, 그동안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불법으로 구해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자막을 달았던 블로거들 또는 팬서빙 그룹과 큰 마찰이 있었다. 유럽에 한국 방송사들과 계약을 맺은 유료 서비스 공급자가 생김으로써 그동안의 모든 팬서빙 활동은 불법이 되었고, 무료노동임에도 밤을 새우며 자막을 달던 이 열성팬들은 하루아침에 한류 콘텐츠의 도용자가 되고 말았다. 이때 일반 팬들의 염려는 그동안 무료로 보던 드라마를 유료로 봐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엘리트 팬(영어, 나아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 팬(이들의 대부분이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팬이었다가 드라마 팬으로 전이한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열성팬이며 전문가라는 점에서, 또한 스스로 즐기기에 만족하지 않고 팬 커뮤니티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희생을 실천한다는 점에서)들의 열정노동의 결과인 자막이 사업자에 의해 도용되지는 않을까, 그리 빠른 시간 동안 ‘드라마파시용’이 달아서 유료 서비스하는 드라마 자막이 양질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것은 드라마 제공서비스의 ‘질’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잘 말해주는 사례이다. 드라마 자막 달기는 전례 없이 활발한 자발적인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의 사례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드라마를 방송하는 텔레비전 채널 수가 증가하더라도, 그리고 서유럽의 문화적 장벽이 무너져 언젠가 유럽의 공중파 채널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더라도, 이 공식 채널이 제공하는 한류 콘텐츠의 양과 내용은 하드코어 팬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세계의 팬들은 이 공식 루트를 기다리지 않고 여전히 제3국의 서버를 전전해 접근 루트의 불법성을 세탁해가면서 팬자막을 달 것이고, 갈수록 직접 한국어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수용자의 수도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제작사, 방송사 등 저작권자들이 이러한 세계의 드라마 수용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는가이다. 각국 방송사나 드라마파시용과 같은 지역 사업자들과 계약을 통해 작은 수입원을 늘리는 방식, 아니면 직접 다국어 자막과 매력적인 보너스가 담긴 드라마 DVD를 제작해 수출하는 방식, 또는 영어자막이 지원되는 온라인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어 저작권자가 직접 유료 서비스를 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유럽의 한국 드라마팬을 다년간 관찰한 나의 견해는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이 장기적 전망에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유의미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드라마파시용’이 생겼을 때, 유럽 팬들의 불만 중 하나는 다운로드를 허용하지 않고 스트리밍으로 보는 데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문화권마다 문화 콘텐츠에 대한 태도가 다를 것이 예상되지만, 컬렉션 문화를 지닌 유럽의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물인 경우 ‘양질’의 것을 컬렉션하기를 원한다. 멀티미디어 서점의 비디오서가를 가득 채운 미국 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 DVD 전집들은 매우 비싼 가격의 선물로 선호된다. 한국 드라마가 동아시아를 벗어난 세계 속에서 대중문화 콘텐츠가 아니라 팬덤에 기초한 현실을 이해한다면, 드라마는 오랫동안 인터넷을 주된 플랫폼으로 하여 유통될 것이며, 한국의 저작권자는 팬문화의 이해를 바탕으로 시장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