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과 침체 일로에 있던 아이돌 문화에 EXO의 등장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12명의 ‘역대급’ 군무와 퍼포먼스, 중국과 한국을 아우르는 철저한 마케팅, 오랜만에 보는 10∼20대 여성들의 절대적인 팬덤, SM 남자 아이돌로선 유례없이 빠르게 형성된 스타덤, 불티나게 팔리는 각종 패션 아이템, 앨범 판매 100만장 돌파…. 한마디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이 EXO를 이같은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일까. EXO는 새로운 아이돌 문화의 출현을 알리는 전조라도 되는 걸까. 연구자로서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지만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라 볼 근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먼저 EXO의 성공비결을 꼽아보자. 잘생겼다, 잘한다. 이건 당연하다. 그러니까 인기가 있는 것이고. 관건은 이들이 그냥 인기를 넘어 어떤 점에서 아이돌 문화의 패러다임을 선도하느냐 하는 데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EXO는 어떤 점에서 새로움을 보여주는가.
스토리텔링과 내부화 전략의 상품
그동안 한국의 아이돌 음악산업의 발전은 ‘상품 영역이 아닌 것의 상품화’와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ies)의 내부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성공적인 산업부문들이 호황을 열고 불황을 극복하는 과정은 이와 같은 규칙성을 따르곤 한다.
먼저, 상품화 전략. 1세대 아이돌들이 학교폭력과 입시지옥을 상품 모티브로 삼았던 것은 비교적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들은 날 짓밟았어 하나 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학교종이 땡 하고 울리면서 우리들의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포스트-서태지 시대에 H.O.T와 젝스키스가 각각 <전사의 후예>와 <학원별곡>으로 데뷔했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2세대 아이돌은 god의 전례에 따라 예능 프로그램으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고, 비교적 최근에 와서 3세대 아이돌은 데뷔 과정 자체를 매체에 노출함으로써 사생활과 친밀성마저도 상품화했다.
EXO가 팬심을 자극하는 데 있어 스토리텔링 전략이 주목받는 것도 바로 이같은 맥락 때문이다. 시우민의 결빙, 카이의 순간이동, 레이의 힐링, 크리스의 비행, 타오의 시간조절 등은 어찌보면 오글거리는 설정들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손발 퇴갤’에 그치지 않는 것은 오늘날 10대와 20대 대부분이 이미 유년 시절부터 일본 서브컬처의 판타지 내러티브에 정서적으로 친숙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런닝맨>의 초능력 설정이 초딩들의 절대적 열광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으르렁’대던 초인들이 최근곡 <12월의 기적>에 이르러선 스스로 사랑에 미숙하다며 ‘이 초라한 초능력 이젠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읊조리니 EXO를 향한 팬심은 더 절절해질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젊은 층의 정서구조,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시장상황을 적절히 읽어내고 상품전략을 잘 가져갔던 셈이다. 그 결과는 이들 12명을 플랫폼으로 해서 음반과 음원 시장은 물론 의류, 액세서리 시장에서의 승승장구로 이어졌다. 향후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부가콘텐츠 시장까지도 노려볼 만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둘째, 외부불경제의 내부화 전략. 일본 아이돌에 비해 후발 주자인 한국 아이돌이 보이는 결정적인 장점은 가창력과 퍼포먼스 능력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1세대 아이돌의 ‘붕어’ 논란 덕분이다. 관대한 일본에 비해 엄숙한 한국 정서에서는 립싱크에 의존하는 아이돌 문화가 사회문화적으로 비난을 받을 소지가 다분했다. 그래서 2세대 아이돌부터는 단단한 실력으로 무장한 아이돌(보아, 동방신기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한국 아이돌 음악이 K-POP 타이틀을 획득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공화국이 무너지기 시작한 원인은 공교롭게도 스캔들이었다. 2PM의 재범 사태를 필두로 해서 카라는 기획사와의 분쟁, 빅뱅은 대마초 흡입, 아이유는 연애 등으로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그 와중에 음주운전과 폭행 사건도 빠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선 스타들의 사생활이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데 사회학에서는 이와 같이 사회적 규범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일반화된 타자’라고 한다. 분명 상품경제 바깥에 있는 영역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화된 타자를 거스르고서는 결코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없다.
EXO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이미 데뷔 전부터 아동복지관 등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아이돌 스타들이 스캔들 때문에 기획사에 유무형의 손실을 끼쳤던 걸 생각하면 스타의 인성부터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전략적 시도는 가히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O는 일종의 착한 상품인 셈이고, 그들의 기획사 SM은 윤리경영을 시도한 형국이다. 게다가 상당수 기획사들이 주식 시장에 상장/등록되어 있는 이상, 기업이 자신의 시장가치를 높이면서도 ‘장기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졌다. 그런 점에서 EXO의 봉사활동은 단순히 순수한 심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아이돌 문화가 일반화된 타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전략, 즉 초기 상품화 단계서부터 외부불경제를 내부화하는 경영 전략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음악의 종다양성에 관한 문제
상품화 전략으로서의 스토리텔링과 내부화 전략으로서의 봉사활동. 한국 아이돌 음악산업의 추세성에 비춰보자면 EXO는 확실히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듯하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일지, 나아가 어떠한 문화적 성취를 이룩할지에 관해선 예측이 쉽지만은 않다. EXO로 압축되는 새로운 플랫폼 전략과 외부비용 내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답의 영역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음악의 종다양성에 관한 문제다. 산업적 성공이 커질수록 규격화/표준화/획일화 경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일반화된 타자는 미학적 다원화와 성취에 목이 타기 마련이다. 이런 바람은 이른바 한류가 흥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야 댄스음악 일변도의 K-POP이 오타쿠 심성을 지닌 해외 마니아층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얼마나 보편적인 음악을 생산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할 것인지에 관한 의문은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한류의 꽃, 아이돌의 미래를 지켜보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EXO도 흥미롭지만, 포스트-EXO는 더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