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꾼 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은 무엇입니까?” 장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을 본 지 한달이 넘었는데, 새해 벽두에 그 영화의 장면들이 꿈에 나왔다. 꿈을 묻는 영화가 꿈에 나오다니. 꿈에 나는 그 영화의 등장인물이었고 어디론가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일터로 가는 것 같았다. 걷고 있는 나와 보조를 맞추면서 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상태로 카메라가 나를 따라왔다. 나는 이주노동자가 아니므로 이 영화에 등장할 이유가 없음을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주노동자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갑자기 모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막막함, 불안, 슬픔, 그 속에서도 끝내 유지되는 노동하는 행위의 아름다움, 입김처럼 번지는 따스함, 매우 시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며 흔들리는 풍경들, 질문과 발견들… 꿈은 영화처럼 흘러갔고 이윽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는데, 뜻밖의 장면이 돌출했다. 엔딩에서 카메라가 올려다본 하늘에… 피 묻은 옷들이 떠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날아든 캄보디아 소식 때문일 것이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봉제공장 노동자들에게 경찰과 군이 총을 발사해 5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부상당했다는 소식. 다시 말하자. 월급 9만5천원을 주면서 주당 60시간의 노동을 시키다가 참고 참던 노동자들이 월급을 16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하자 공수부대가 들이닥쳐 노동자들을 때리고 총 쏴 죽였다. 더욱 기막힌 것은 현지 한국 기업의 요청으로 인근의 911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시위가 격화되고 유혈사태가 발생했다는 것. 이 사건을 초기 보도한 한국의 지상파 방송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논평했다. 노동자 시위 때문에 생산 차질이 심해져 현지 한국 기업의 피해가 막대하다고.
캄보디아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안 되어 방글라데시에서도 한국수출가공공단에서 발생한 시위에 경찰이 발포해 스무살의 여성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비윤리적인 노동자 착취와 탄압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노예처럼 부려지는 사람들과 그들을 향해 발포되는 총탄을 목도하고도 ‘한국 기업의 피해’ 운운이 전부인 방송의 수준은 한국 자본의 수준을 방증하는 것일 테다.
<풍경>의 카메라가 떠오른다. 캄보디아, 베트남 등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을 인터뷰하는 카메라는 조심스럽다.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들의 노동현장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자세로 자주 머뭇거리고 오래 멈춰 있던 카메라. 현장의 소리들이 예민하게 살아 뒤척이는 영상. 감독이 유지하고자 한 간격과 머뭇거림이 어떤 고뇌에서 출발했는지 공감되었으므로, 아름다웠다. 예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뇌가 살아 있는 영화처럼, 노동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노동자가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윤리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뇌할 수 있는 자본은 불가능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