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최대 대목장사인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든 논의들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고 있다. 질로는 대선/총선에 못 미쳐도 양으로는 먹어주는 시즌 상품인 관계로 정치권의 움직임은 분주하고 소음도 크다. 야권 재편을 놓고 기싸움도 한창인데, 근거가 미약하고 형평도 맞지 않으며 무엇보다 원전 합리화로 악용될 위험이 높은 ‘송주법’(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해 새 정치를 하겠다는 대표주자께서 별다른 설명 없이 찬성표를 던지는 걸 보면서,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정치의 틀이 아니라 내용이라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됐다.
이번 지방선거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하나다. 탈핵. 정말 이러다 모두 한방에 훅 갈까 겁난다. 북의 핵무기보다 남의 원전이 내겐 더 현실적인 공포이다. 일본 도쿄도지사 보궐선거가 원전이 있어야만 한다는 세력과 원전을 없애야만 한다는 세력의 ‘탈원전 국민투표’로 부상하는 걸 보면서, 새삼 일본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나마 일본열도는 길기라도 하지, 우리는 어느 원전에서 사고가 나도 전국이 재앙이다. 성장의 크기로만 따져도 ‘대박’ 앞선 일본조차 저렇게나 몇년째 속수무책인 원전재앙을 코앞에서 목도하면서 우리 정치에서 ‘녹색’이 이렇게나 홀대받는 건 정녕 미스터리이다(미스터 리의 그 ‘녹색’ 말고).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부키 펴냄)에는 좋은 삶을 위한 일곱 가지 기본재가 소개돼 있다.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 경제성장이란 그것이 창조적이든 구태적이든 이것들과 나란히 가기 참 힘들다. 오히려 피해를 끼친다. 케인스의 나라 영국을 봐도 그렇다. 좋은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국가의 성장 지표들이 아니다. 그런 성장의 엔진으로 신봉되어온 원전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를 당 간판과 전력에 앞서 유심히 보련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다. 원전 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