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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벌거벗은 사랑의 찬가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4-01-27

한혜진

그의 삶에서 웃은 기억이 얼마나 될까. 수협에서 일하면서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수발을 드는 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악성 채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 호정(한혜진)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 감당해본 적 없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그가 의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채무 문제가 아니면 평소 만날 일이 없는 사채업자 태일(황정민)이 그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혜진이 <남자가 사랑할 때>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으면서 만났던 호정은 “자신 앞에 놓인 상황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여자”였다. “식사하셨어? 얘기 좀 하게”라는 태일의 끈질긴 구애가 호정의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이유도 “나 아니면 다른 것에 요만큼도 관심 없는 호정의 상황” 때문이다. 사랑할 여유가 없는 여자가 자기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에게 어떻게 마음을 열까. “그걸 영화적인 장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배우의 감정만 가지고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호정은 한혜진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멜로 장르라는 것이 한혜진의 마음을 붙들었다. “이번이 제대로 된 첫 멜로영화였다. 멜로가 많지 않은 현재 충무로에서 결혼한 여배우가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올까. 나이가 들면 더 못하게 될 것 같아 꼭 하겠다고 했다.”

출연을 흔쾌히 결정하면서 그가 한동욱 감독에게 요구했던 건 하나. 호정이 자존심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태일과 호정은 다른 환경의 사람이다.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호정은 자존심과 고집을 세울 것 같은 여자”라는 게 한혜진의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 태일은 매일같이 호정을 찾아가 “밥 먹자”는 세레나데를 날리지만 호정은 본체만체한다. 그러면서 큰 사건 없이 마음의 변화를 조금씩 드러내야 하는 건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호정이 태일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미묘한 행동과 감정만으로 보여줘야 했기에 초반 몇회차는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이 정도구나. 벌거벗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현장에서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도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동선을 잘 숙지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본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심리적으로 안정이 됐다. (웃음)”

주로 드라마에서 활동한 까닭에 “영화 콘티가 아직도 낯설다”는 한혜진에게 상대배우 황정민의 존재는 든든했다. 황정민이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 현장에 틀어놓은 음악은 한혜진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은 가슴을 확 두드렸다. 음악을 비롯해 모든 것들이 내 연기를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황정민 선배를 보면서 배웠다.” 황정민에게서 배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배우로서 가져야 할 태도도 새롭게 다잡았다. 감독이 “오케이”했을 때 수긍한 그를 두고 황정민이 “감독이 오케이해도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으면 한번 더 해보겠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충고한 것이다. “내가 순종적이다. 드라마할 때도 작가님이 써준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걸 지켜본 황정민 선배님이 ‘더 잘할 수 있는데 한번 더 하지 않느냐’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들은 뒤로부터 한혜진은 매 테이크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집념을 보였다.

<남자가 사랑할 때>를 찍으면서 한혜진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그가 기성용 선수와 결혼해 영국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이다. 언제 다시 서울에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남자가 사랑할 때>도, 현재 찍고 있는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도 매 작품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을 해도 언제든지 작품을 할 수 있는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현실적인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가정이 우선이다. 그러다보니 작품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조건이 많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중해지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역할이든지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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