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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어려운 남자 <남자가 사랑할 때>
장영엽 2014-01-22

“눈앞에 아른거리고, 자꾸 생각나면 그게 사랑 아니냐?” 시장통을 전전하며 빚을 수금하는 사채업자 태일(황정민)은 고민에 빠졌다. 빚을 받으러 나간 자리에서 채무자의 딸인 호정(한혜진)을 만났는데, 자꾸만 그녀가 생각나는 이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호정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태일은 자신을 만날 때마다 빚을 삭감해주겠다는 말로 그녀를 설득한다. 자신과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믿었지만, 태일의 진심에 호정도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작지만 따뜻한 보금자리를 꿈꾸며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 그러나 어쩐 일인지 2년 뒤 태일은 감옥에서 출소한다.

꿈도 희망도 없는 건달이 아름답고 순수한 여자를 만나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진다. 이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얘기다. 최근 영화로는 <창수>가, 지난 영화로는 <파이란>이 떠오른다. 살아온 환경과 사회적 층위가 다른 남녀의 만남에 대해, 이전의 수많은 한국 멜로영화들이 탐구하고 구축한 어떤 전형이 있고 관객도 이미 그걸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식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 태일의 주변 인물을 통해 ‘사랑’의 범위를 확장시킨다는 데에 이 영화의 매력이 있다.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다. 여태껏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 태일은 호정과의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그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의 착하고 우직한 테마에 현실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전적으로 배우들의 몫이다. 치매를 앓고 있지만 마을버스 노선만큼은 기막히게 기억하는 아버지(남일우), 앞길을 막는 가족들이 원망스럽지만 어떻게든 끌어안고 함께 가려는 형(곽도원), 태일이 형과 싸울 때마다 은근슬쩍 챙겨주는 형수(김혜은)와 부모보다 삼촌을 더 닮은 조카(강민아)까지, 태일의 가족으로 출연하는 조연배우들의 호연은 이 영화가 태생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신파의 무게를 덜어준다.

보는 이들을 ‘울리는’ 역할은 주연배우들의 차지다. 7년여 만에 멜로 장르로 복귀한 황정민은 지극히 디테일한 상황과 대사들을 통해 감정을 길어올리는 데 여전히 능하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남자, 태일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아이처럼 우는 장면이 압권. 그에게서 <신세계> 정청과 닮은 모습을 보길 원했던 관객이라면, “드루와”라는 <신세계>의 명대사와 카메오 출연한 어떤 인물의 등장이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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