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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간지 죽입니다, 형님

<창수>를 보며 건달 패션에 대해 생각하다

<창수>

가끔 기자처럼 보이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딱 한벌 있는 트렌치코트에 마찬가지로 딱 한벌 있는 A라인 스커트를 입고, 네모난 가방을 들고, 힐을 신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와, 진짜 기자 같은데? 저기, 나 진짜 기자거든.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스타일이 매우 우아했던 어느 선배는 내 너저분한 옷차림을 참고 참다가 드디어 내게 물었다. “그런 옷은 어디서 사는… 혹시 만들어 입니?” 그날 나는 치맛자락에 거대한 빨간 새틴 리본과 왕구슬 목걸이를 매달고 몸통에는 번쩍거리는 스톤으로 기린을 만들어 붙인, 소매와 치마 끝에 러플이 팔랑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평소처럼, 호호.

그래도 그렇지 너무한 거 아니냐고 분개하던 내가 같은 질문을 던진 건 <창수>를 보면서였다. 창수가 입고 다니는 묘하게 통이 넓은 듯하면서도 다리에 감기는 바지와 현란한 무늬의 티셔츠 따위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저 영화 의상팀은 저런 옷을 어디서 사는… 혹시 만들었나? 그리고 궁금해졌다. 건달의 스타일이란 어떻게 창조되는 것인가, 건달처럼 보이고 싶다면 어떻게 입어야만 하는가.

몇년 전, 형님들을 위한 인터넷 쇼핑몰이 생겼다. 그 쇼핑몰이 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지금은 없어졌다) 철학은 확실했다. 광고 문안을 보자. “남자들도 여자들 못지않게 스타일을 중시하는데 여자들이 ‘엣지’ 있는 패션 스타일을 선호한다면,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간지’ 있는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XX몰의 옷들은 강인함 속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매력 포인트로 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섬세한 자수와 과감한 프린트, 느슨한 실루엣의 형님들이 나타났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목포는 항구다>

이 쇼핑몰이 특이했던 건 트레이닝복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었다. <목포는 항구다>에서 건달들이 왜 그렇게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 쇼핑몰이 건달 간지를 위한 명품 트레이닝복이라고 소개한 옷에는 귀엽게도 스누피가 그려져 있었다. 스타일에는 액세서리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네가 건달이냐고 손자뻘 되는 집안 청년 하정우에게 두들겨 맞는 최민식은 하정우 것과 비슷한 굵은 금목걸이를 하고 있다. 역시 건달의 상징, 금목걸이. XX몰의 벨트는 명품 브랜드를 모방한 것들이었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버클이 크고 두껍다는 점이었다. 유사시에는 무기로 활용하기 위한 것인가.

하지만 외모는 더욱 중요하다. <목포는 항구다>에서 건달들은 일단 살을 붙여 덩치를 키우기 위해 라면에 개 사료를 말아 먹는다. 그렇다면 실제 건달은 어떨까. 예전에 진짜 건달이 썼다는 살찌는 법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닌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충격적인 요소 두 가지가 기억난다. 하나는 떠먹는 요거트였고, 다른 하나, 살찌는 핵심이라는 음식은 잣죽이었다. 배도 안부르고, 몇분 안에 마셔버릴 수 있고, 칼로리 대마왕이라는 잣죽. 내가 잣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끗발이라고는 터럭 한올만큼도 없는 창수는 신창원 티셔츠만큼이나 알록달록한 옷으로 나도 건달이라며 티 내고 다닌다.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티 내고 싶었던 날은 불편한 상대와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나이가 굉장히 많거나 성격 나쁘다고 소문이 났거나 예술영화를 만드느라고 내가 알아먹지 못할 말만 떠들 것 같은 상대와의 인터뷰. 그런 인터뷰가 잡히면 나는 주눅 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공작이 꼬리를 펴며 뽐내는 것처럼 트렌치코트 자락을 펄럭였다.

창수도 그랬던 걸까, 주눅 들고 싶지 않았나. 오색의 깃털을 벗고 선녀처럼 어여쁜 여자와 삼겹살을 구워 먹던 창수의 등은 멀건 죽만 마시며 나무를 하던 나무꾼처럼 말라 있었다. 그 안쓰러운 등에 간지 나는 스누피 무늬의 트레이닝 상의 한벌을 살포시 둘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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