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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의 메커니즘

<변호인> vs. <남영동1985>

<남영동1985>

<남영동1985>(이하 <남영동>)와 <변호인>은 모두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다. 두 영화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발생했던 ‘공안 사건’과 그에 연루된 인물을 영화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남영동>에는 고 김근태씨가 피의자로 연루되었던 1985년의 ‘민추위 사건’이, <변호인>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로 참여했던 1981년의 ‘부림 사건’이, 각각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남영동>의 마지막 부분에는 각각 대통령과 장관이 된 두 인물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고, <변호인>의 마지막 부분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집회 대열의 맨 앞에 앉아 있는 송우석 변호사(송강호)의 모습을 보여주는 1987년의 장면이 등장한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민추위 사건에 연루된 수배자의 행방을 알아내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런 공통점과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사실 두 영화는, 영화적 만듦새의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다른 영화다. <남영동>이 한 인물이 22일 동안 겪었던 사건에 대한 일종의 르포르타주에 가까운 영화라면, <변호인>은 한 인물이 어떤 사건과 조우하면서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성장 드라마다.

두 영화가 재현하고 있는 두 사건의 중심에는 공통적으로 ‘고문’이라고 불리는 ‘체제의 폭력’ 문제가 개입되어 있는데, 그 문제를 다루는 방식(또는, 영화적 효과)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가 미묘하게 혼재되어 있다.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는 ‘공안 사건’의 경우, (어쩌면 현재까지도) 고문은 선택 사항이라기보다는 사건을 성립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고, 단순히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피해자의 ‘인격 파괴’를 최종 목표로 수행된다(언제나 고문은 피해자들 사이에서 원망과 죄책감을 만들어내는 심리적 조작과 결합하여 수행된다). 두 영화의 고문 장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고문의 메커니즘’이 공통적으로 드러나 있다. 차이는 그 ‘고문의 메커니즘’의 인격적 담당자라고 할 수 있는 두 경찰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난다. <남영동>의 이두한(이경영)과 <변호인>의 차동영(곽도원)은 모두 프로페셔널한 공안 사건 전문 형사이지만, 이두한이 고문 과정에서 사디스트적 쾌락을 느끼는 악마성을 형상화하고 있는 인물이라면, 차동영은 일종의 역사적 전형성을 담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차동영의 반공주의의 바탕에는 자신의 가족이 ‘빨갱이’에게 죽었다는 역사적 상처가 있지만, 이두한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차동영의 반공주의에 일종의 역사적 사명감이 있다면, 이두한의 반공주의는 전문가적 자존심(또는, 직업적 이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두 영화가 보여주는 서로 다른 성격의 형상화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서로를 보충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원한 감정과 현재의 이익에 대한 계산된 욕망의 분리할 수 없는 착종,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보수주의’의 감정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메커니즘은 단순히 두 영화가 다루고 있는 80년대라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적어도 공식적으로) 고문행위가 사라졌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고문의 메커니즘의 토대를 이루는 감정(또는 욕망)과 정치적 논리는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인>에서 ‘송변’의 정치적 각성의 결정적 계기는 고문이라는 탈법적인 행위의 존재 자체라기보다는 그 행위를 저지른 자가 보여주는 흔들림 없는 자신감과 당당함이다. <변호인>이 한 인물에 대한 휴머니즘적 성장 드라마로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과거’(1987년)에서 멈추는 낭만성을 갖고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현재적인 어떤 현상(체제의 자신감과 당당함)에 대한 당혹감(또는 질문) 또한 담겨 있다. 그것은 <변호인>과 이 영화에 대한 뜨거운 대중적 반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서로 다르면서 혼재되어 있는 이 시대의 ‘징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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