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Vie En Rose 1997년 감독 알랭 베를리네 출연 조르주 뒤 프레슨 <KBS1> 2월24일(일) 밤 11시25분
“빈번한 공상의 삶, 도덕적 순수성, 자신이 사회 바깥에 있다고 느끼는 슬픔. 결국은 모든 걸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부하기” 를 만든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청소년기의 특징을 이렇게 열거한 적이 있다. <나의 장미빛 인생>은 이 특징을 좀더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바꿔놓으면서 한가지 장치를 첨가한다. 어린 남자아이가 스스로 ‘여성’이라고 느끼고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다. 아이는 모든 이들에게 소외당하고,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 시작한다. 벨기에 출신의 알랭 베를리네 감독은 한 아이의 험난한 정체성 찾기 여정을 아기자기한 만화적 상상력으로 치장해놓는다.
루도빅은 예쁘장한 소년.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한다. 이 아이는 자신을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고 남자아이처럼 노는 것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루도빅은 제롬이라는 남자아이를 좋아하게 되는데 이를 알게 된 주변 어른들은 깜짝 놀란다. 루도빅은 제롬과 결혼하고 싶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고 학예회에선 친구 대신 백설공주 역을 가로채 교내를 발칵 뒤집어놓는다. 루도빅의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부모는 아이의 머리를 강제로 짧게 자르고 다른 곳으로 이사갈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도 루도빅이 여장차림으로 돌아다니자 부모의 한숨과 걱정은 날로 늘어만 간다.
<나의 장미빛 인생>이 섹슈얼리티나 동성애를 심각하게 논하는 영화인 건 아니다. 영화 속 루도빅은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커밍아웃’이라 부르기엔 좀 미흡하다. 성장하는 과정 중에 느끼는 성정체성의 혼란으로 볼 여지도 있다. 영화는 루도빅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어른 vs 아이’의 갈등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과정을 담아낸다.
<나의 장미빛 인생>은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들 세계의 부조리함을 조망하는 영화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영화에서 크리스틴이라는 여자아이는 남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드레스를 입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반대로, 부모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루도빅에겐 바지가 불편하다. 자신이 여성에 가깝다고 느끼는 루도빅은 현실 세계 대신, 광고판 속 세계를 동경한다. 알랭 베를리네 감독은 아이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언급에 동화와 판타지를 이어붙인다. 애니메이션으로 빚어낸 광고판의 세계는 루도빅이 꿈꾸는 아름답고 고립된 세상, 그것이다. 영화 결말은 열린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빼어난 성장영화로 보기엔 미적지근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
아이의 부모는 “니가 원하는 대로, 게다가 너 좋을 대로”라는 반응으로 모든 소동극을 마무리하고 루도빅은 스스로 선택권을 쥔 채 행동할 자유를 얻는다. 그가 어떤 성정체성을 택할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각본 과정에도 참여한 베를리네 감독은 어렸을 적 경험한 일을 회고하면서 작업했다고 전해진다. <나의 장미빛 인생>은 섹슈얼리티 문제를 재치있게 변주한 가족 코미디에 가깝다. 가녀린 소년으로 출연하는 조르주 뒤 프레슨의 모습은 다시 봐도 귀엽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