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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심판은 어디 있는가

금요일 밤 케이블 채널에서 WWE 프로레슬링을 대표하는 프로그램 <스맥다운> 중계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레슬링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에 다리 한쪽씩을 올려놓은 독특한 형태를 갖습니다. 영화처럼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지만 현장에서의 즉흥성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며, 배우가 액션연기까지 관중 앞에서 실연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러한 장르문법 덕분에 혹자는 ‘짜고 치는 쇼’라고도 하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 다섯 글자에 들어 있는 함의가 아프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WWE <스맥다운>을 보시면 레퍼리가 계속 이런저런 동작을 취하면서 경기에 관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양 선수가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는지 보디체크를 합니다. 보디체크가 끝난 뒤엔 정식으로 공이 울리기 전까지 양 선수를 각자의 코너로 격리시켜서 경기시작 시점을 조절합니다. 공이 울리면 레퍼리는 더욱 바빠집니다. 먼저 반칙을 했을 경우 다섯까지 카운트를 합니다. 제대로 된 경기를 하도록 반칙을 한 선수에게 주의를 줍니다. 만약 출혈이 일어났을 경우 즉시 체크를 하고 이 상황이 ‘실제 상황’임을 알리기 위해 흰 장갑을 착용합니다. 도저히 경기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X자를 크게 그어서 경기 스탭들에게 사인을 보내 경기를 중지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레퍼리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단순히 반칙을 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 전반에 걸쳐서 프로레슬링이라는 장르의 문법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관객에게 시합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어디인지 알려주기도 합니다. 현장 관객은 자기 자리에 앉아 한정된 앵글로 경기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들이 뒤엉켜 있거나 쓰러져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요. 이때 레퍼리가 카운트를 하고 주의를 준다든지 악역 레슬러에게 떠밀려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경기 흐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기진행이 부드럽게 흘러가게끔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반칙을 억제하고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레퍼리. 한국 사회에서 보자면 바로 언론이 레퍼리 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여와 야 또는 각각의 세력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대중에게 전달해주고 아울러 근거 없는 인신공격 등의 반칙을 했을 경우 경고 사인까지 보내는 레퍼리. 때론 정의와 진실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레퍼리.

그런데 한국 사회는 어떤가요. 대한민국 의사 20%에 해당하는 2만명이 여의도에 모여서 집회를 해도, 서울광장에 시민 10만명이 모여도, ‘겨울에 눈 많이 온다’라는 뉴스에 밀려서 그 소식을 접할 수 없거나 짤막하게 단신으로 처리되고 맙니다. 어떤 이슈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마치 ‘폭풍우 속에서 난간을 붙잡고 버티는 기자’의 모습처럼 치열한 대립의 스펙터클만을 중시합니다. 아니면 레퍼리가 노골적으로 특정선수 편을 들어주는 응원단 역할을 하거나 아예 직접 선수로 뛸 때도 있습니다. 레퍼리가 필요합니다. 링에서 싸울 선수는 많습니다. 우리에겐 이제 진짜 레퍼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