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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맛집 말고 인생
이다혜 2014-01-09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 후안 모레노 지음 / 반비 펴냄

자리 40여석, 1인당 지불하는 평균 음식값 120달러, 예약 불가. 프랭크 펠레그리노가 운영하는 뉴욕의 레스토랑 라오스에 테이블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곳의 단골 고객에게서 테이블을 상속받는 것이다. 우디 앨런은 이곳에 테이블을 갖고 있고 셰프이자 오너인 펠레그리노를 영화 <맨해튼 살인사건>을 포함한 세편의 영화에 출연시켰다. 마틴 스코시즈도 이곳에 테이블을 갖고 있으며 <좋은 친구들>에 펠레그리노를 출연시켰다. 마돈나와 빌 클린턴, 브라이언 드 팔마는 테이블을 얻지 못했다. 이 레스토랑의 전설은 18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마피아 갱단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면부터였다. 독일 저널리스트 후안 모레노가 쓴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에 나오는 첫 번째 사연이 바로 펠레그리노다. 신기한 셰프를 잘도 찾아냈군 싶겠지만, 이 책은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의 전속 셰프, 사형수에게 마지막 음식을 요리해주는 셰프 등 도합 17명의 특이한 셰프의 사연을 실었다. 인물의 삶과 개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미르코 탈리에르초의 사진들도 근사하다.

밤 카트는 시위현장에서 시위대를 위한 음식을 만든다. “배고픈 혁명은 실패할 것이기에 그는 요리를 한다. 그는 정치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며, 생명을 사랑하고 지역 상품을 소비하며 채식주의자다.” 이 책은 반핵 시위현장으로 향하는 카트를 따라가며 상황을 보여주는데, 과격한 원칙주의자로 소신을 굽히지 않는 그의 삶에는 날이 바짝 서 있다. 정반대의 인물은 알프스 산골의 700년 된 게스트하우스에서 요리하는 할머니 오타비아 파서다. 어머니 손맛이니 어쩌니 하며 미디어에 오르내린 그녀지만, 그녀의 요리가 밭에서 딴 재료를 이용해 화학조미료 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녀에게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외의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70대인 그녀는 이름부터가 8번째 아이라는 뜻을 지닌, 딸 아홉에 아들 하나인 집의 자식이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운영하던 산골의 게스트하우스를 물려받는 대신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한 그녀는 남동생과 알프스 산골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늙어갔다. 남편도 아이도 없는 그녀에게는 조카만 33명이 있는데, 요리로 유명세를 탄 이 게스트하우스를 물려받겠느냐고 물었으나 33통의 거절편지를 받았다. 암스테르담의 라시드는 마약을 넣은 음식을 만든다. 코카인, 마리화나, 그라스…. 그가 만든 요리의 사진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주의사항은 이렇다. “이 음식을 먹은 뒤에는 운전을 하거나 중기계를 작동해서는 안 된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절대로 자녀들과 함께 먹어서는 안 된다.”

남을 먹이는 일은 위안이니 힐링이니 하는 말랑거리고 따뜻한 단어들과 함께 포장되곤 한다. 하지만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는 남을 먹이는 일이 내가 사는 일인 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기 아무도, 유명한 셰프가 되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멋진 점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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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말고 인생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