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평범한 일상을 다룬 듯한 영화 <고추 말리기>는,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직업과 외모를 가진 감독의 구질구질하고 피곤한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저녁 대신 부쳐먹은 계란 몇개로 엄마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은 희선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나 바깥일을 하는 며느리와 먹을거리에만 관심이 있는 손녀 덕에 집안일을 도맡은 할머니가 화분에 물을 주며 푸념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들의 분노가 묘하게 억눌리고 왜곡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때로 카메라는 그들을 프레임 안의 또다른 프레임으로 가두어 압박한다. 카메라의 위치를 살피는 일은 따라서 흥미롭다. ‘툭 널브러진’ 느낌이 나게끔 의도했다는 고현욱 촬영감독의 말처럼, 책상 위에 올려진 탁상시계나 현관 옆 신발장 위에 으레 놓이는 꽃병처럼 카메라는 그렇게 집안 구석구석에 자연스런 모습으로 ‘짱박혀’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들이 차지한 공간을 옥죄기 시작한다. 희선과 할머니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주로 하이 앵글이 등장하는데, 그녀들의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가 모두 성공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심리를 앵글로 나타낸다는 게 그의 말마따나 ‘환장할 노릇’이라 희선과 할머니에게 신경쓰느라 희선의 엄마에 이르러서는 섬세한 결을 살리지 못해 아쉽다는 게 그의 불만이다. 하지만 “어떤 화면을 잡더라도 컷이 튀어 내러티브를 깨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만은 제대로 구현된 듯하다.
★ 그는 영화판에서 조금은 까다로운 사람으로 불린다. 아무하고나 작업하지 않는 행보 때문이다. 아무래도 영화찍을 땐 감독과의 ‘궁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다. 그런 그에게 마음 넓고 포용력 있는 장희선 감독과의 만남은 ‘행운’ 그 이상이었다. 그는 주어진 콘티대로 영화를 찍는 이른바 ‘셔터맨’이 되기를 끔찍이도 거부한다. 콘티작업만은 자신과 반드시 함께하길 요구한다. 그래야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얻을 수 있을뿐만 아니라 빛과 앵글을 일관되게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콘티작업이란 화면이 만들어지는 첫 번째 단계이므로 마땅히 촬영과 조명이 처음부터 함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군말없이 요구를 받아들인 장 감독에게 그는 깔끔한 화면과 인물의 심리를 헤아리는 구도와 질감을 선사했다.
★ 미술공부를 하던 큰형과 사진을 다루던 작은형에 의해 그의 진로도 진작에 사진쪽으로 결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지되어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에 더욱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영화로 선회한다. 결국은 감독이 되기 위해 카메라를 잡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그에겐 사람 다루는 일보다 기계 다루는 일이 훨씬 편했기에 미련없이 촬영을 택했다. 약 5편의 단편작업을 하는 동안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그의 앞에 같은 학교 선배인 장희선 감독이 나타났다. 당시 그는 <프레셔 플레이트>라는 이름의 작품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 내용을 보고 장 감독이 먼저 연락을 한 것이다. 용인대에서 빌린 기자재로 한달 반 만에 찍은 <고추 말리기> 이후, 그는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용인대에서 시간강사를 하며 장편작업을 준비중인 그는 돈 때문에 장편 상업영화를 찍고 싶진 않으며 16mm 독립장편으로 다시 인사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글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사진 정진환 기자 jungjh@hani.co.kr
프로필
1971년생
1991년 김인철 단편 <빛과 어둠의 에스키모> 16mm 촬영
제8회 금관영화제 촬영상 수상
1995년 코닥 워크숍 수료
1997년 단국대 영화학과 졸업
이승민 단편 <전염> 16mm 촬영
1998년 용인대 예술대학원 영상학과 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