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사랑의 습관 A2Z>의 원래 제목은 <A2Z>이고, 사랑의 ‘습관’ 같은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 사랑의 순간들을 A부터 Z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통해 재구성하고자 노력하는데 읽어보면 그마저도 어딘지 억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연애소설을 선물해야 한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작가요 책이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는 동화 속 구호의 가장 먼 곳에서 싹트고 꽃피는 어떤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이자 화자는 35살로, 출판사에 근무하는 제법 능력 있는 편집자다. 남편 역시 일 잘하는 편집자. 그런데 남편이 ‘그 여자’와의 관계를 고백한다. 엄밀히 말하면 캐물었더니 숨기지도 않고 술술 털어놓았을 뿐인데, 남편이 솔직하게 다 말해주는 통에 더 어쩔 줄 모르게 되어버렸다. 남편과는 아이 없이 동료처럼 지내는 사이. 이전에도 여자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이번만은 다르다. 결혼과 사랑에 대한 생각을 35살에 새로 시작해야 한다면, 이전과 다른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야마다 에이미식의 연애담이 아니다. 희생자의 자리에서 넋을 놓는 취미는, 야마다 에이미에게도 주인공 나쓰에게도 없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에쿠니 가오리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다나베 세이코와 완전히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내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남편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듯.” 나의 자유를 요구하고 그만큼 너의 자유를 인정하는 일이 어째서 사랑에서는 어렵기만 한지. <사랑의 습관 A2Z>는 특이하리만치 쿨한 두 남녀를 통해 묻고 답한다. 남녀관계와 부부관계가 같아 보이면서도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일까. 잠자리를 같이하는 애인이 있다는 말과, 애인과 함께 공통의 언어를 찾고 있다는 말은 같을까 다를까. 연인이 함께 읽기에는 부적절하지만 연애에 제대로 큰코다친 이들에게는 제법 속깊은 이성친구가 되어주는 기묘한 연애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