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평론가가 예술품 너머의 흔한 사물을 응시한다. <사물 판독기>는 그렇게 태어났다. <한겨레21>의 ‘반이정의 사물보기’에 연재한 글을 기본으로 해 몇 꼭지를 추가하고 또한 수정했다는데, 목차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책이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사무실에서 혹은 집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지금 눈에 들어오는 ‘그것들’에 대한 생각. 개를 찾는다는 전단지와 겨드랑이털에서부터 가족사진, 개량한복, 사전, 청바지 등 도합 100가지의 사물이 여기 늘어서 있다. 짧은 글과 호응하는 이미지는 같은 ‘소재’를 다룬 예술작품인 경우가 많은데, 글이 이미지를 해설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글은 글대로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남훈이 쓴 <싸우는 사람들>의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에는 그의 좌우명이 적혀 있다. “남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싸운다.”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그가, 싸우는 사람들의 인생 필살기를 적었다. 그가 생각하는 링은 지금 여기다. 모든 인간은 자기만의 링에서 자기만의 기술로 끝까지 싸우는 거라고. 프로레슬러, 이종격투기 선수 등 파이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묶은 3부는 물론이고, 오지 전문 여행 PD 탁재형, 오지 레이서 유지성, 모터사이클 레이서 겸 미캐닉 최시원, 서울지방경찰청 폭주족 전문 수사팀장 김홍주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김남훈은 자기만의 기술을 연마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파고든다. 오지 레이서 유지성은 순위가 아니라 완주에 목표를 둔다고 말한다. 1등을 포기하니까 99가지의 즐거움이 생긴다고, 그걸 놓치기가 싫다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의 한 사진작가가 글과 사진으로 하루씩 기록해갔다.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의 보온병은 안상수의 ‘그’ 보온병이며, 이 사진과 글은 노순택의 것이고, 이 책의 헌사는 “안상수에게/ 깊은 감사와 우정의 표시로 이 책을 바칩니다”. 분단은 멈춘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기능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잊고 사는 이들에게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는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와 같은 구실을 한다. 그 와중에 웃음도 있다. 연평도 주민인 환갑 먹은 어르신의 이야기. “무슨 군대도 안 간 놈이, 씨~벌. 그놈이 군대도 안 갔잖아. 그러니까 그걸 포탄이라고 하지.” 왜 이제 와 안상수를 갖고 그러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사진과 글이 서로 깊이를 더해가며 호흡해간다는 게 노순택 작가 책의 강점. 다만, 전부 읽고 나면 약간은 울적해지는데, “아, 이때는 그래도 웃음이 있었어” 하고 한숨짓게 된다. 혹시 이것이 안 해본 것 없는 오빠의 나라와 해본 것 없는 언니의 나라의 차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