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뉴스룸에 나온 한 사회학과 교수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현상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다원적 무지’(많은 사람들이 같은 처지에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데도 그것이 소수의 입장인 것으로 잘못 인지되는 상태)에 빠져 있다가 한 사람의 발언을 계기로 생각을 분출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동의한다. 피로사회에 이어 소진사회, 탈진사회, 급기야 질식사회라는 얘기가 나오던 중이다. 뽑았으니 어떻게든 하겠지 했다. 더 나빠질 것도 없을 듯했다. 집권 1년, 스멀스멀 차오르던 어이없음과 불쾌감이 공포와 불안으로 바뀌었다. 우격다짐도 그렇거니와 내용도 없고 예측도 안 되기 때문이다. 바쁘고 귀찮고 피곤해서 무지하고 싶었지, 우리 사람, 진짜 무지한 건 아니거든.
철저히 정부 편향적인 언론 환경에서 철도노조 파업에 우호적인 여론이 더 높다는 것은 민영화에 대한 거부감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설명이 너무나도 설득력이 없어서다. 내용에서 앞뒤가 맞지 않으니 그 많은 프레임도 마이크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 어쩌자고 그런 발표들을 몽땅 최연혜 코레일 사장에게 맡기나. “수서발 KTX 자회사를 만들어 코레일과 경쟁하게 하겠다.” “돈 벌면 다시 가져올 수 있다.” 아 정말… ‘저는 바보라서 코레일 운영 못하니까 돈 되는 부분은 떼어다 다른 분들이 운영해주세요’라는 말을 정녕 당사자에게 시켜야 했을까. 이런 천하에 비겁한 국토부 님들.
바닥에 전기가 통하는 우리를 둘로 나누어 놓고 한쪽 우리에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경고 신호를 준 뒤 강하고 긴 전기 충격을 가하고, 다른 쪽에는 사전 신호 없이 불규칙적으로 약하고 짧은 전기 충격을 가한다면 생쥐들은 어디로 갈까? 충격이 크더라도 사전 경고가 있는 우리쪽으로 들어간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고통이 크더라도 예측되는 게 낫다는 얘기이다. 그런 선택지라도 있는 생쥐들이 살짝 부러워지려 한다. 모쪼록 ‘안녕들’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