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한결같은 얼굴도 없다. 벌써 스물다섯 청년으로 커버린 이주승은 지금도 <청계천의 개>로 데뷔했던 열아홉살 때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부루퉁해 보이는 긴 눈과 꾹 다문 입도 여전하다. 여러 감독들이 꾸준히 이주승에게서 비뚤어진 소년의 모습을 찾는 이유인 것 같다. 이유빈 감독의 <셔틀콕>에서 이주승은 부모를 잃고 도망간 누나를 찾으러 나선 소년 민재를 연기한다. 어린 동생 은호(김태용)를 짐처럼 데리고 다니며 여기저기 부딪치고 쓰러지는 동안 조금씩 자라는 민재는 이주승의 지금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셔틀콕>으로 얼마 전 폐막한 제39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스타상을 수상한 이주승과의 만남.
-수상을 축하한다. =기쁜 나머지 뒤풀이 파티에서 정신없이 취해버렸다. (웃음)
-이유빈 감독이 꼭 캐스팅하고 싶어 했다는데. =싸이월드 쪽지로 캐스팅 제의를 하셨다. 대본을 먼저 주고 부대로 면회를 오셨다. 틈틈이 대본을 분석하면서 준비했다. 촬영 때 운전을 해야 돼서 말년휴가 때 면허도 땄다. 촬영은 전역 이틀 뒤 바로 시작했다.
-여전히 고등학생 역으로 캐스팅되는 비결이 뭔가. =나도 서서히 늙고 있다. (웃음) 표정 변화가 없는 편인데 나름대로 미세하게 표정연기를 한다. 육안으로 볼 땐 잘 안 느껴져도 카메라엔 잡힌다. 훈련된 표정이 없는 걸 좋게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셔틀콕>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군생활 막바지에 사회에 나가면 뭘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민재가 놓인 상황이 나랑 비슷하더라. 자유롭게 살아와서 그런지 군대가 너무 갑갑했다. 실제론 길치여서 지도 앱을 손에 달고 다녀도 어딜 못 간다. 이걸 하면 많은 곳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웃음) 이지훈 촬영감독님 얘기를 꼭 하고 싶다. 무슨 감정으로 연기할 건지 촬영감독님과 상의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민재의 감정대로 화면을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실제 모습이 민재와 많이 비슷한가 보다. =계획 없이 산다는 점이 비슷하다. 나도 돈 생기면 친구들에게 술 사주고, 돈이 없어지면 그제야 불안해한다.
-민재 같은 첫사랑도 있었나. =어릴 때 연애했던 건… 바보 같았다. 아직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해본 것 같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까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게 사랑이 아닐까. 바람 피운 연인도 용서해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어떻게 그걸 이해하지? 나라면 다신 안 볼 것 같은데.
-<셔틀콕>에서 좋아하는 대사나 장면은. =민재가 차 안에서 자다 깼을 때 거지가 은호를 위협한다. 민재가 창문을 치고 욕을 하면서 내심 불안해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더라. 다들 재밌으려고 여행을 가지만 사실 여행은 정말 위험하지 않나. 영화에선 다들 여행 중에 살인이 나고 사고도 난다. 철모르게 여행 다니는 애들 겁먹으라고 그런 영화를 만드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불난 집을 바라보는 장면은 우연히 건졌다고 들었다. =감독님이 갑자기 어딜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멀리 보이는 집에 큰 불이 난 거다. 후다닥 감정 잡고 찍었다. 보기 드물게 독립영화에서 스케일 큰 장면이 만들어졌다. 사실 제작비를 모두 쏟아부어도 만들지 못했을 장면인데.
-은호를 연기한 김태용과의 앙상블이 좋았다. =민재와 은호의 관계가 나와 태용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고 일어나면 ‘태용이 보러 가야지’ 하면서 귀여워하다가도 한 시간 놀아주면 귀찮아졌다. (웃음) 현장에선 태용이가 날 너무 좋아해서 달라붙어 다녔다. 매일 나와 같이 자려고 했다. 촬영할 땐 매니저가 없어서 스탭들이 날 많이 챙겼는데 태용이가 그걸 질투해서 나한테 돌도 던졌다. 나는 화가 나서 바다에 던져버리겠다고 태용이를 안고 바다로 가고, 태용이는 울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웃음)
-차기작은. =<소셜포비아>를 찍고 있다. 인터넷 카페를 만드는 경찰준비생으로 나온다. 현장에 또래 배우가 많은데 너무 친해져서 문제다. 볼 때마다 웃겨서 연기에 집중이 안 된다. (웃음) 김경묵 감독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도 촬영을 마쳤다. 몇신 안 나오는데 내가 엔딩을 ‘먹어서’ 미안했다. 내년 초 개봉할 상업영화에 악역으로도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