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 한반도를 지배하는 두 체제의 극단적인 모습을 본다. 조선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보안원들에게 끌려나가는 장성택과 평택 쌍용차 노조에 물린 손해배상 판결액 46억여원. 전자는 숙청이라고 하고 후자는 소송 폭탄이라고 한다. 일인 독재에 방해가 된다면 누구든 없앤다. 확인할 길 없는 온갖 파렴치한 죄명을 붙이고 증오를 부추기며 말이다. 자본의 왕국에 걸리적거리면 목줄을 틀어쥔다. 정리해고나 강제휴업도 모자라 재산을 가압류하고 없는 돈까지 뱉어내게 하면서 말이다. (장성택의) 과거는 철저히 부정되고 (노조원들의) 미래는 악랄하게 저당잡힌다.
둘 다 후진적이라는 말로는 모자란다. 문명적으로 설명이 어렵다. 3대 세습도 낯설지만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 청구나 가압류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다. “당의 유일적 영도를 거세하려 했다”는 게 장성택 숙청의 공식 이유인데 나열된 내용들은 종파행위, 경제사업 방해, 타락•부패 등 참으로 코에 걸지 귀에 걸지 모를 것들이다. 아닌 말로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에 ‘유일적 영도’가 가당키나 한가. 우리는 그래도 저 동토의 왕국과는 달리 법과 절차가 있다고?
헌법상 정당한 쟁의행위에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 문제는 정당하냐 아니냐의 기준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어도 코걸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자본과 권력에 유리한 쪽에 걸렸으니까. 막 세상에 눈뜬 내 아이가 뉴스 화면을 보고 “왜 경찰이 사람을 지켜주지 않고 때리냐”고 놀라 물었던 그해 여름의 기억이 아직도 서늘하다. 생존을 위한 파업이 불법으로 몰렸다. 폭력 진압 끝에 기나긴 해고와 구속이 이어졌다. 삶의 희망을 놓은 24명의 목숨을 속절없이 떠나보냈다. 그렇게 일자리도 가족도 건강도 동료도 잃고 5년째 한뎃잠을 자는 이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까지 물리는 것이 과연 법이고 절차인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숙청’된 잔인하고 끔찍한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