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라는 제목에는 애틋한 데가 있다. 쓰지 못한 글이나 찍지 못한 영화라면 현실적인 제약이나 능력의 한계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찍지 못한 순간이라면 어떤 순간을 마주한 적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로 찍지 못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뉴요커>부터 <뉴스위크>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일한 경력의 사진작가 윌 스티어시는 50여명의 동료들과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라는 책을 냈는데, 여기에는 카메라가 갈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곳, 사적인 곳 혹은 군중 속의 정경, 가난의 얼굴 혹은 블링블링한 현장이 소개된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역시 낯선 이에게 다가가는 일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 모양으로, 실비아 플래치는 <빌리지 보이스>를 위해 사진을 찍던 때 동료에게 수시로 “다이앤 아버스라면 진작에 사진을 찍었을 텐데”라는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도 9•11 때 맨해튼에 있었다. 영화가 아니라 뉴스에서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들이받은 여객기를 보여준 그날 오후, 사진가로서의 충동에 이끌린 그녀는 사건 현장으로 갔다. 42가 아래쪽에 다다라, 온몸에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남자가 인형처럼 기계처럼 공허하게 걷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는 우리 모두였다.” 그를 찍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없이 걷는 그를 막아서야 했지만, 그렇게 한다는 게 수치스럽게 느껴졌고 옳은 일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그런 강렬한 이미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자살한 딸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한 사내가 우는 순간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고, 누군가는 첫사랑과 버려진 호텔의 침대 위에 있던 그 순간을 담지 못했고, 몇명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 카메라를 내려놓았고, 누군가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찍겠다고 했다가 가족의 반대에 부딪혔으며, 누군가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포르노 사진을 찍은 모습을 목격한 일을 기억해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찍지 못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진 없는 사진책.
[도서] 마음에만 찍은 순간
글
이다혜
2013-12-12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 윌 스티어시 엮음 / 현실문화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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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마음에만 찍은 순간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