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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매커너헤이] 속 깊은 섹시 가이
송경원 2013-12-03

매튜 매커너헤이

“진짜 잘생긴 남자가 누군지 모르는구나.” 때는 1996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를 놓고 한참 의미 없는 격론을 벌일 때 누군가가 불쑥 내뱉었다. <타임 투 킬>이란 영화에 나오는 배우인데 정말 잘생겼다는 말에 모두 모여 함께 사진을 찾아본 사람들은 모두 그가 잘생겼다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토론을 이어나갔다. 레오와 피트 중 누가 잘생겼는지.

이른바 전형적인 얼굴이 있다. 사람 얼굴만큼 복잡다단한 것도 없지만 사람 얼굴만큼 단순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없다. 매튜 매커너헤이는 누가 봐도 전형적으로 ‘잘생긴’ 얼굴이다. 훤칠한 이마, 오똑한 콧날,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는 시원한 미소, 시리도록 맑고 푸른 눈,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금발 곱슬머리까지. 왠지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핑보드를 들고 뛰어야만 할 것 같은 건강미 넘치는 미남자, 굳이 분류하자면 섹시 가이에 속하는 얼굴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외모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했을 것이다. 그의 전형적인 외모에서 뿜어져나오는 이미지는 그만큼 강력했다.

<타임 투 킬>에서 정의감에 불타는 신참 변호사를 맡았을 때도 그의 이름을 알린 건 인상적인 연기력이 아니라 빛나는 외모였다. 브래드 피트와 맞먹는 섹시함으로 이름을 날린 이래 해마다 전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순위를 매길 때 그의 이름이 빠진 적이 없다. 하지만 전형적인 섹시 가이 이미지는 차츰 그의 족쇄가 되었다. 슈트를 입어도 섹시하고, 과학자(<콘택트>(1997))가 되어도 섹시하고, 갱스터(<뉴튼 보이즈>(1998))가 되어도 섹시하고, 군복(<U-571>(2000))을 입어도 섹시하다. 암만 연기 변신을 해보아도 자상하고 섹시한 과학자, 어수룩해도 섹시한 갱스터가 될 뿐이다. 그리 나쁘지 않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남는 건 여전히 섹시 가이 이미지였다.

반면 제니퍼 로페즈와 함께 출연한 <웨딩 플래너>(2001)나 달달한 남자가 무언지 확실히 보여준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2003) 같은 영화는 필모그래피상 비교적 후반기에 속한 영화임에도 확실하게 대중에게 각인된다. 실상 맞는 옷을 찾아 입은 것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는 미리 결정된 이미지에 묻혀 의도치 않게 몇몇 오해 속에 지내고 있는데, 이를테면 전형적인 호주 미남인 것 같지만 사실 텍사스 출생이라는 점이 대표적이다. 호주에 교환학생으로 가기도 했고 호주 억양 때문에 종종 오해받긴 하지만 매튜 매커너헤이는 감리교 가정에서 자란 미국 토박이다. 텍사스대에서 라디오, TV, 영화를 전공한 그는 데뷔 초기 드라마에서는 주로 깨어 있는 지식인 역할을 소화했다. 심지어 배우 경력보다 1년 빠른 1992년 <시카노 캐롯>의 연출자로 영화계에 데뷔하기도 했다. 데뷔 초기 작품들을 훑어보면 변호사, 과학자 등 지적인 역할 위주였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부질없이 어느새 그는 섹시 스타, 캘리포니아 해변의 비치맨이 되어있었고 한동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그의 탄탄한 외모에 다른 이미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달까. 그런데 최근 매튜 매커너헤이의 행보를 보면 데뷔 초기 그가 그토록 원했던 다양함, 그리고 여유가 엿보인다. 요 몇년 사이 거장 감독들이 찾은 배우 1순위에 오르내리며 드디어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계기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2011)였지만, 씨앗은 이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머드>의 8할을 이끌어가는 머드 역할 또한 제프 니콜스 감독이 <론스타>에 출연한 매튜 매커너헤이를 봤을 때부터 구상한 캐릭터라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타임 투 킬>보다 먼저 출연했던 이 영화에서 매커너헤이는 인종차별을 덮고 있는 위선적인 마을의 이면을 파헤치는 보안관으로 출연했다. 미국의 비극과 역사를 찬찬히 읊조리는 이 영화에서 그는 이미 느리지만 섬세한 눈망울로 비극에서 눈 돌리지 않고 끌어안는다. <머드>를 만나기 전부터 ‘머드’는 이미 그의 안에 자리해 있었던 것이다.

머드는 진흙탕에서 뒹굴고 부랑자 행세로 도망다니면서도 심각하게 인상 찌푸리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고 담담히 듣고 가슴속에 품는다. 큰 상처가 있지만 떠벌리지 않고 흥얼거리며 넘긴다. 깊이 있는 슬픔과 여유, 40살이 넘은 매튜 매커너헤이에게 맞는 옷이란 이런 것이다. 옆에서 담담히 들어주는 속 깊은 남자. 주변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 그리고 사리를 판단하는 지적인 눈빛. 그간 섹시 이미지에 갇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머드> 안에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다. 여심을 뒤흔드는 바람둥이 이미지는 전형적인 미남자였던 그가 원치 않아도 입어야만 했던 의무와도 같았다. 그 옷을 벗는 데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10년이란 세월이 있었기에 드디어 얼굴의 주름까지 보이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데뷔 초기, 무던히도 강한 역할과 연기 변신에 집착했던 매커너헤이는 그 탓인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감도 없지 않았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무렵부터 그는 스스로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지 않는 요령”을 배웠다고 밝혔다. 요지는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마저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함께 갈 때 길은 넓어졌다고 말한다.

확실히 2011년 이후 매튜 매커너헤이의 얼굴은 달라 보인다. 이제 더이상 미남자가 아니란 말이 아니다. 화사한 미소 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아련히 바라보고 천천히 젖어드는 표정이 이젠 보인다는 의미다. 자신의 가장 큰 장기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임을 깨달은 이 미남자는 이제 더이상 인상 쓰지도, 억지 미소를 짓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렇게 문고리를 틀어잡은 손에 힘을 풀자 문이 열렸다. <매직 마이크>에서 카우보이 미남자로 화끈하게 놀아본 뒤엔 <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카우보이 연기를 선보인다. 텍사스 출신 미남 배우는 <론스타> 이후 한동안 멀리했던 카우보이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능한 모든 역할을 쓸어 담는다. <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관련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카우보이 모자가 주인공이 아니”란 걸을 이젠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섹시 가이, 미남자의 얼굴 밑에 지적이고 부드러운 관찰자의 눈빛을 가진 배우는 이제 인생 2막, 제2의 전성기에 돌입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기대되는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magic hour

에이즈 카우보이

내년 오스카는 매튜 매커너헤이의 차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40대가 되자 연기 폭이 확 넓어진 그는 <머드>에 이어 <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진면목, 아니 드디어 잃어버렸던 감성을 선보였다. 에이즈에 감염돼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후 대체약물을 밀수해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을 도왔던 텍사스의 전기기사 론 우드푸드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에서 그는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져가는 카우보이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무려 30kg을 감량했다. 기록적인 감량이기도 하거니와 아카데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야기인 만큼 후보는 물론 벌써부터 유력 수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40살이 넘어서자마자 스타가 아닌 연기자로서 전성기를 맞고 있는 매튜 매커너헤이가 내년에 그 정점을 맞이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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