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쌀쌀했던 지난 11월, 한국예술원을 찾았다. 충정로역 8번 출구에서 나와 고개를 돌려보니 한국예술원 정문이 눈에 들어온다. 학교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스타들이 이 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것이다. 입구에 작곡가 김형석, 음악감독 박칼린 등 스타 교수들의 얼굴 사진이 걸려 있다. 지각한 학생 눈에는 마치 교수님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는 듯 여겨질 것 같다. 한국예술원은 지상 4층, 지하 1층으로 된 한동짜리 건물이다. 이곳에서 실용음악예술학부, 공연예술학부, 영화방송디자인예술학부, 문예창작예술학부, 방송연예예술학부 등 5개 학부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공부한다. 건물은 하나지만 갖출 건 다 갖췄다. 악기가 구비된 앙상블실, 단행본 1천여권이 구비된 도서실, 최종편집을 위한 마스터링룸, 방송미디어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촬영실습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2011년 신축된 건물이라 깔끔하고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국예술원은 실기 위주의 특성화된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실용음악, 영화, 연기, 뮤지컬, 방송 등을 가르치는 예술 분야 전문학교다. 교육부(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승인을 받은 학점은행제 예술전문 고등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일정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한 뒤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것과 마찬가지로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스타 교수들이 많은 것도 철저한 현장성과 실기 위주의 교육을 우선시하는 학교의 취지 때문이다. 1996년 국내 최초 사립영화전문교육기관인 ‘네오영화아카데미’에서 출발한 한국예술원은 이후 교육부의 인가를 받으면서 ‘한국영화교육원’으로 규모를 확장했다. 2012년부터는 실용음악, 뮤지컬 등으로 교육의 범위를 넓히면서 지금의 한국예술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국예술원의 뿌리이기도 하며 가장 전통이 오래된 영화과는 타 학부와의 교류를 통해 협력하며 학교를 이끌어나가는 주축이 되고 있다.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학제 개편

한국예술원을 찾은 날은 곧 있을 졸업영화제 준비로 학교에 남아 있는 영화과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학교 주변에서 각자 로케이션을 하고 흩어져 촬영 중”이라고 영화과 오기환 교수는 설명했다.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도 일방적인 강의식이 아니라 서로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조언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마침 학교에 남아 있던 두명의 영화과 학생들을 만났다. 12학번 이효수는 무대미술과 학생과 함께하는 융합수업의 프로젝트에서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무대미술과 학생들은 아무래도 미술적인 부분에 치중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예산에 맞춰 작업하는 영화와는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해야 하는 작업은 고되지만 중요한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황민하는 실습수업의 프로젝트와 졸업영화제 기획, 영화 스탭 참여 등으로 현재 3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다른 학교 영화과를 다니다가 자퇴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예전에는 내가 쓴 시나리오를 나눌 상대가 없어 혼자만의 환상에 빠져 있었던 게 사실인데 여기에 입학한 뒤로는 서로 얘기 나눌 기회가 많아 작품을 보는 객관적인 안목이 생긴 것 같다”고 평했다. 두 학생은 소위 말하는 ‘예체능 군기’가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실질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점이 한국예술원의 장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화방송디자인예술학부는 기존 영화미디어예술학부에서 올해부터 명칭을 변경하고 학과 체제를 재편했다. 영화, 방송, 멀티미디어, 사진을 아우르는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날갯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기존에 있던 영화과, 방송영상과 외에도 멀티미디어디자인과, 사진영상과 등이 새롭게 신설됐다. 영화과는 영화연출 전공과 촬영, 편집, 미술, 사운드를 아우르는 영화기술 전공, 영화제작/기획 전공, 영화이론 전공으로 세분화된다. 기존에 영화기술과 제작이 합쳐졌던 것을 분리했고, 영화이론 전공을 새롭게 추가했다. 영화과의 장점은 무엇보다 철저한 실기 위주의 교육이다.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실제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전수받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자재 등 최신의 설비를 이용해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실전 경험을 하게 된다. 최근 학생들이 만든 작품이 국내외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실기 위주 교육의 힘을 증명하고 있다. 2011년에는 이태호의 단편 <집 앞에서>가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뤘다. <비보호좌회전>으로 2010년 밴쿠버국제영화제 단편부문에 초청된 안승혁(09학번)은 2012년에는 <캠퍼스의 봄>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바 있다. 그 밖에도 최영은(05학번)은 <내 가슴속의 락앤롤>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이진호(10학번)의 <지하로>가 도쿄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오기환 교수는 “영화제 수상 실적은 다른 대학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졸업생의 활동도 눈에 띈다. 영화의 연출, 촬영, 제작, 기획, 시나리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각종 영화제에 상영되며 화제를 모은 <도살자>(2007)의 김진원 감독과 페이크 다큐멘터리 <목두기 비디오>(2003)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윤준형 감독이 이 학교 출신이다.

미디어디자인 전공, 사진영상과 신설

방송영상과는 기존에 제작/연출로 크게 나눠지던 것을 드라마연출, 예능연출, 다큐/교양/보도연출, 영상촬영/영상편집/사운드/조명/방송미술 등 분야별로 세분화했다. 집중 심화교육을 통해 최근 달라진 방송환경에 맞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멀티미디어과는 멀티미디어디자인과로 명칭을 변경하고 시각디자인, 영상디자인, 미디어디자인, 게임/애니메이션 등으로 분야를 구체화했다. 신설된 멀티미디어디자인 전공에서는 새롭게 대두된 콘텐츠 환경에 맞춰 웹, 모바일, 전자책 등의 분야를 탐구한다. 게임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전공으로 추가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이와 함께 사진영상과가 새롭게 신설됐다. 영상뿐만 아니라 사진 등 매체 전반을 포용하려는 학과의 시도가 엿보인다.

입시전형

영화방송디자인예술학부(영화과, 방송영상과, 멀티미디어디자인과, 사진영상과)는 생활기록부 10%, 면접 90%로 학생을 선발한다. 포트폴리오 제출 시 가산점이 부여된다. 면접은 학생 1명당 20분 이상이 소요되는 심층면접 방식이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ikac.kr) 참조.

“졸업할 때까지 5~8편의 작품을 만든다”

한국예술원 영화과 오기환 교수

-학과 체계를 재편한 계기는. =종합대학으로 가려는 시도가 제일 중요한 이유다. 기존에 있던 영화과가 시너지를 얻기 위해 학과 체계를 보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를 통해 컴퓨터그래픽 부분을 보강하고, 영상과 관련한 총체 교육을 하기 위해 사진학과를 신설하게 됐다. 앞으로는 이 시스템으로 계속 갈 것 같다.

-학과간의 교류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연기자가 필요할 때는 방송연예예술학부 학생들과 협업을 한다. 수업시간에 특강을 하거나 상호 오디션을 치르기도 한다. 방송영상과와는 타이포그래피나 디자인, 편집, 자막 작업에서 협업이 이뤄진다. 영화과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경우도 많아 갈수록 방송영상과와 협업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한국예술원만의 차별점은. =매 학기 우수한 시나리오 작품에 장학금을 주는 제도가 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초청해 특강을 진행하는데 특히 조명, 촬영은 최고 수준의 강의라 자부한다. 매 학기 실습 위주의 수업이 마련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졸업할 때 대략 5~8편 정도의 작품을 만들게 된다. 수상 실적이 뛰어난 편이다. 다른 학교 영화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칸영화제, 클레르몽페랑, 밴쿠버영화제 등 국제 영화제에도 학생들이 진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면접 비중이 90%로 매우 높다.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보나. =한 사람당 20분 이상 심층 면접을 진행한다. 오랫동안 면접을 하기 때문에 이야기하다보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게 마련이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자신이 영화를 왜 좋아하고, 영화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사위원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가이다. 왜 영화를 하고 싶고, 그 방법이 뭔지, 이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지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의 미래가 궁금하다. 미래가 궁금해지는 사람을 뽑는다.